산불엔 작은 비도 큰데…인공강우 투입 못한 이유

2025-03-31

열흘 동안 사상 최악의 인명·재산 피해를 양산한 산불이 대부분 진화됐다. 산불·화재 진압 요원이 목숨 걸고 화마와 싸운 덕분이다.

불길이 잡히는 과정에서 비·눈은 감초 역할을 했다. 많은 양의 비는 아니었지만 절실한 시점에 내린 비가 땅을 적시면서 진화 작업에 상당한 지원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인공적으로 비를 뿌리는 인공강우에 이목이 쏠리는 배경이다.

중국, 내몽골 화재에 인공강우 투입

1946년 미국서 처음 개발한 인공강우는 인위적으로 강수를 유도하는 기술이다. 요오드화은·염화칼슘·염화나트륨 등 화학물질로 만든 구름씨를 구름에 뿌리면 수분 알갱이가 달라붙어 구름 속 물방울을 눈·비로 만들 수 있다.

인공강우 선진국들은 이미 실용적 목적으로 비를 뿌리거나 비가 내리는 시점을 지연시키고 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인공강우 효과를 톡톡히 봤다. 베이징의 공기 질을 정화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개막 전 인위적으로 비를 뿌렸다가, 개막식 당일엔 역(逆) 인공강우 기술을 적용해 비를 지연시켰다. 화학물질을 탑재한 로켓 1104기가 비구름을 분산시킨 덕분이다.

미국도 노스다코다·와이오밍·캘리포니아·텍사스 등 10여개 주에서 인공강우 실험을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노스다코다 프로젝트는 구름씨를 싣고 간 항공기가 구름을 자극해 곡물 수확을 증대하는 것이 목표다.

태국 왕립 인공강우농업항공국도 건기에 댐과 저수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인공강우를 실시한 바 있다. 지난해 극심한 가뭄·더위가 예상되자 30대의 항공기를 띄워 77개 주에서 인공강우를 내렸다.

산불 진화에 직접 활용한 사례도 있다. 2017년 5월 내몽골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이 대표적이다. 네이멍구(內蒙古) 다싱안링(大興安嶺) 산맥에서 큰불이 나자 중국 정부는 산불 진압을 위해 4차례에 걸쳐 39발의 로켓을 쏘아 올려 인공강우를 유도했다. 강수량(2㎜)이 많지는 않았지만, 인공강우가 화재 지역을 골고루 적셔준 덕분에 화재 진압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인공강우, 진화보단 예방에 효과적”

인공강우는 산불 예방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장기호 국립기상과학원 연구관은 “중국·미국도 인공강우 기술을 구름에 적용했을 때 평균 실패율이 30% 안팎인 데다, 성공해도 강우량을 10~20% 정도 늘리는 수준”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인공강우로 산불을 진화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마치 영화처럼 인공강우가 맑은 하늘에 갑자기 비를 내리게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다만 건조한 봄철이 오기 전에 인공강우로 산불 우려 지역에 미리 비를 뿌려둬 땅을 적셔두면 산불 예방에 유리할 수 있다. 최근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산불이 확산하는 와중에도, 이보다 나무가 더 많은 강원도 지역은 잠잠한 상황도 원리는 같다.

염성수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3월에 이례적으로 강원도에 지난 18일까지 산지를 중심으로 40㎝가 넘는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졌다. 덕분에 메마른 산지가 촉촉해지면서 이번 산불 사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인공강우 분야에서 후진국이다. 중국은 지난해 인공강우 예산에 4조원 안팎을 쏟아부었고, 태국도 인공강우 연구진만 300여명을 보유한 것으로 기상청은 파악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인공강우용 비행기 1대만 운영 중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선진국 대비 한국의 인공강우 기술은 60년 정도 뒤처져 있다고 평가했다.

인공강우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구름씨로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토양·해양 오염을 유발할 수 있어서다. 또 화학물질을 투입해 구름의 수분을 인위적으로 써버리면 인근 지역에선 가뭄 등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도 갈 길이 멀다. 염성수 교수는 “까다로운 기후 조건을 충족해야 인공강우 실험에 성공할 수 있는데, 산불이 발생한 상황에서 인공강우에 필요한 기후조건까지 갖춘 경우는 드물다”며 “평소에 산지에 구름이 많을 때마다 수증기를 비로 변환하는 산불 예방 관점에서 인공강우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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