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美제품 2000억弗 사라" 압박…동맹에도 관세로 '조공' 요구

2025-01-14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관세 전쟁이 한창이던 2020년 1월 중국은 2021년 말까지 2000억 달러어치의 미국산 상품과 서비스를 추가 구매하기로 미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중국은 트럼프가 2020년 대선에서 패하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 따르면 중국이 협정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수입해야 했던 규모는 2년간 총 5024억 달러였지만 실제 수입액은 2908억 달러에 그쳤다. 2100억 달러가 부족한 만큼 트럼프와의 약속 이행률은 ‘제로’인 셈이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 기간 “당선될 경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2020년 체결한 양국의 1단계 무역 합의 이행을 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통상적으로 관세는 수입 장벽을 높여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도구로 쓰인다. 하지만 트럼프의 언급에는 중국산 제품 수입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미국산 제품을 중국에 더 많이 팔겠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관세를 도구로 다른 나라에 경제적 기여를 요구하는 이른바 ‘조공의 시대’를 예고하는 장면이다. 미국 싱크탱크 루거센터의 폴 공 선임 연구원은 “다른 나라들은 미국에 대한 경제적 기여로 새로운 대가를 받게 되는 게 아니라 기존처럼 활동하게 보장을 받는 것일 뿐”이라며 “21세기에 조공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관세 협박은 대미 무역 흑자국에 집중되고 있지만 요구 사항은 통상 분야를 넘어선다. 중국에 이어 미국의 2위 수입국인 멕시코를 대상으로는 자동차 100% 관세는 물론 이민자와 마약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25%의 일괄 관세를 매기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중국과 러시아 등 브릭스(BRICS) 국가들을 상대로는 달러 지배력을 약화하려는 시도를 멈추라고 경고하며 100% 관세를 언급했다. 덴마크에는 그린란드를 팔지 않으면 매우 높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린란드 확보를 통해 북극권 개발이나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 기업의 미국 내 투자 유치도 트럼프의 조공 리스트에 있다. 지난해 12월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1000억 달러를 투자해 트럼프 당선인 임기 동안 10만 개의 인공지능(AI) 관련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트럼프는 그간 관심을 두지 않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만나겠다는 입장을 밝혀 소프트뱅크의 조공에 대한 만족을 드러냈다. 이달 7일에는 아랍에미리트(UAE) 최대 부동산 개발사인 ‘다막프로퍼티스’의 후세인 사지와니 회장이 미국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데 최소 2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대미 무역 흑자국인 한국도 미국에 대한 경제적 기여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방위비 인상은 물론 미국 조선업에 대한 지원 가능성이 수시로 거론되고 있다. 다만 한국 조선업계가 취할 수 있는 실익은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는 “조선업은 이미 중국에 넘어간 지 오래된 산업”이라며 한국의 업체들이 얻는 실익은 없을 것으로 봤다. 조선업을 희생해 관세를 협상하는 일종의 조공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관세 장벽을 높일수록 세계 경제의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유로 지역의 2025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5%포인트 줄어들 것이며 중국은 0.7%포인트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PIIE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이 10%의 보편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은 올해부터 4년간 2830억 달러의 GDP가 감소한다. 해외 각국이 보복 관세에 나선다면 GDP 감소 규모는 7210억 달러로 더욱 커진다. 유럽연합(EU)과 캐나다·멕시코 등은 보복 관세를 예고했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12월 미국을 겨냥해 반도체 생산의 핵심 광물인 갈륨과 게르마늄·안티몬 등에 대한 수출통제를 시행했다.

트럼프의 조공 요구가 금융과 통화 분야로 넓어지면 파장은 더욱 커진다. 트럼프 측근 사이에서는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에 유리한 약달러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2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으로 내정된 스티븐 미런은 최근 보고서에서 “징벌적 관세를 부과한 다음에 통화 합의를 추진하면 유럽·중국과 같은 국가들이 관세를 내리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수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85년 미국이 주요국들의 통화 가치를 높여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도록 했던 플라자합의와 같은 형태의 통화 협정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트럼프의 자택이 있는 마러라고의 이름을 따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라고 부르고 있다.

트럼프가 협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점진적 관세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13일(현지 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신임 경제팀 구성원들이 관세를 매달 천천히 인상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그중 한 가지 아이디어는 매달 2~5%포인트씩 관세를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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