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한국 사회가 중국의 과학기술을 재발견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마치 1957년 소련 과학기술의 성과가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던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처럼, 2025년과 앞으로의 한국은 ‘딥시크 쇼크’라는 경험을 어떻게든 소화하고 이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
이 시대적 과제에 대한 최초의 영향력 있는 반응은 ‘공대에 미친 나라 중국 대 의대에 미친 나라 한국’이라는 구도라고 볼 수 있다. KBS 다큐인사이트 “인재 전쟁”에 의해 일반화된 이 프레임은 사실 오늘날의 중국 과학기술의 약진만큼이나 한국 과학기술계가 겪은 지난 70년의 구조적 변화를 문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인들은 지난 시절 스스로가 국가 건설과 산업화의 근간이었다는 자부심을 적극적으로 기억하고 공유하는 사회 집단이다. 그런데 닷컴버블 붕괴와 외환위기 이후 금세기에 들어 사회의 물질적 보상 체계는 불확실한 도전의 과학기술보다는 확실한 안정의 의학 쪽으로 급속히 쏠렸다. 언제나 경제 성장의 핵심은 이공계 인재들이었음에도 의사들에 비해 제대로 인정받거나 응분의 대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감각은 우리 과학기술인들 사이에서 자못 널리 퍼져 있다. 그러니 중국공산당 지도부와 중국 사회가 과학기술인을 (특히 의사보다 더) 극진히 우대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때는 “한국도 공대에 미친 나라”였음을 새삼 상기하며 우리는 중국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애써 감췄다.
의사 외에도 과학기술인에게는 ‘문과’라는 오랜 맞수가 있다. ‘유교’나 ‘성리학’ 같은 개념을 거론하며 옛날 옛적부터 이 나라는 ‘문과’가 지배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실용 정신과 물질문화가 발달하지 못했고 급기야 근대화에 뒤처져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역사 인식을 우리 과학기술인들은 두루 공유하고 있다. 이런 서사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일련의 성과를 거둔 20세기에 맞춰 ‘문과’의 범위를 주로 법조계(와 법조 출신이 장악하다시피 한 정계)와 상경계로 은연중에 축소함으로써 정서적 설득력을 유지했다(그도 그럴 것이 우리 현대사에서 문학·역사학·철학은 자연과학이나 공학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을 만큼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중국 과학기술의 굴기와 미·중 기술 패권 정세에 대한 나름대로 유의미하다고 생각되는 두 번째 반응이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바로 ‘변호사의 사회 미국 대 엔지니어의 국가 중국’이라는 대조가 그것이다.
이를 주창한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역사연구소의 단 왕(Dan Wang)의 설명은 조금 더 복잡하지만(그는 중국식 모델의 단점에 대해서도 명시적으로 진단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독자들은 대체로 전자를 규제와 비효율로, 후자를 혁신과 효율로 등치 시키고, 적어도 당분간은 후자의 우세를 점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은 앞으로 미국보다는 중국을 더 닮아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이 두 반응을 종합해 볼 때, 중국 과학기술은 한국에 하나의 모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한국이 이해하는 중국 과학기술이란 국가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받는 과학기술, 나아가 과학기술인이 국가와 사회 운영의 전면에 나서는 통치 체제, 정치와 법률의 규제에 제약받지 않는 과학기술, 의사나 율사보다 더 큰 인정과 보상을 받는 과학기술인을 상징한다. 학술적으로 이를 개념화하면, 권위주의적 기술관료주의(authoritarian technocracy)가 된다.
우리가 중국 모델을 참고할 때, 이러한 기본 속성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위주의적 기술관료주의는 한국 사회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성숙시켜 오고 있는 여러 민주주의적 가치 및 실천과 배치되는 부분이 적지 않음을 감안할 때, 특히 그러하다. 단적인 예를 들어, 공대 출신 지도자들이 이끄는 국가가 마윈(馬雲) 같은 기술 혁신의 아이콘을 어느 한순간에 침묵시킬 수 있을 만큼 강성해지는 것이 한국에 마냥 바람직한 일일까?
팬데믹을 겪었다. 인공지능에 의한 대변혁이 예고된다. 행성적 생태 위기 앞에서 어떤 식으로든 ‘녹색’ 미래를 그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거시적 도전 앞에서 과학기술은 시대정신이다. 마땅히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과학의 지위가 더 향상되고 과학 문화가 더 창달해야 하며 국정 운영 전반에 걸쳐 기술관료주의적 합리성이 진작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인의 선의와 전문성과 기지는 더 큰 사회적 영향력을 영위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중국 과학기술이라는 ‘극약’을 과도하게 참고하거나 복용함으로써 초래될 수 있는 주화입마(走火入魔)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만 발전할 수 있다면, 과학기술인의 처우만 개선해 줄 수 있다면, AI G3의 지위를 쟁취하게만 해 준다면, 우리는 중국 공산당식 거버넌스도 기꺼이 용인할 수 있는가? 나는 대부분의 우리 한국의 과학기술인들이, 시민들이 ‘그렇지는 않다’라고 대답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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