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트럼프 '칩스법'에 풍전등화 삼성·SK "막아줄 정부가 없다"

2025-01-24

[비즈한국] “어떤 식으로든 돌아오겠다”던 트럼프가 더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복귀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바라보는 반도체 업계는 고민이 깊다. 통상 정책 전면 재검토 기조 속에서 한국 반도체는 보조금 축소, 관세 폭탄 등 예측 불가능한 사업 환경에 직면했다. 다시 불붙는 미중 갈등 상황에 트럼프의 대중 수출 제재에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대통령 부재 상태로 암초를 마주한 한국 반도체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칩스법이 미운 트럼프, 지원금 확정됐지만 긴장감 계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각) 취임 직후부터 경제, 외교, 사회, 환경 등 분야를 막론하고 행정명령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 수출액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수출 품목 반도체 분야에도 먹구름이 꼈다. 당장 한국이나 반도체 산업을 직접 겨냥한 메시지는 없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와 다른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자국 영토 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서라면 타국 기업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트럼프는 ‘당근’ 대신 관세를 띄운다.

일단은 ‘반도체 지원법’, 이른바 ‘칩스법(Chips Act)’이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폐지까지 거론됐던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평가다. 칩스법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생산보조금 390억 달러, 연구개발(R&D) 보조금 132억 달러 등 5년간 총 527억 달러(약 75조 원)를 지원하는 법안이다.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10년간 중국에서 생산 능력을 5% 이상 확대하지 못한다는 조건이 달린다. 궁극적으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반도체 산업을 재가동하는 취지다. 업계에서는 “이 정책이 미 국회 양당의 지지를 받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대체적으로 유지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한국은 칩스법의 대표적인 수혜국 중 하나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미국 인텔(78.6억 달러), 대만 TSMC(66억 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의 보조금 47억 달러(약 6조 9000억 원)를 받기로 돼 있다. 전체 투자 금액 대비 보조금 비중은 약 12.8%으로 두 회사보다 높다. 지원 규모로 7위인 SK하이닉스에는 4억 달러(약 6600억 원)이 배정됐다.

지난달 지급이 확정되면서 한시름 놓은 상황이지만 변수가 사라진 건 아니다. 당선인 시절 트럼프 측이 보조금 정책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반도체 업계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트럼프는 선거 운동 기간에 ‘반도체 보조금은 너무 나쁘다’, ‘대만이 미국 칩 사업을 훔쳤다’며 이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돈 많은 해외 기업에 돈을 쥐어줄 게 아니라 외국산 반도체에 관세를 매겨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도록 만들면 된다는 논리였다. 바이든 정부가 임기 내 보조금 지급을 완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지만 아직 집행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 CNBC에 따르면 웬들 황 TSMC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19일 4분기 보조금 일부(15억 달러)를 받았다고 밝혔다.

#리더십·보호 정책 부재 어떻게 돌파하나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할 경우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의 입지는 좁아진다. 바이든 정부는 임기 마지막까지 첨단 반도체 관련 대중국 제재를 잇달아 내놓았는데 트럼프 2기에서는 더 무자비한 무역 제재를 단행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수출을 견인하는 반도체 산업이 위기를 맞이했는데도 계엄 및 탄핵 정국으로 인한 리더십 부재나 반도체 특별법 등 정책적 대응력이 떨어지는 상황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은 반도체 시설에 조 단위 지원하는 미국, 대만, 일본 등과 달리 세액공제 혜택만 적용하고 있다. 반도체 특별법은 국내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당초 여야가 공감대를 이뤄 발의하고 여당이 당론으로 지정했지만 추가된 ‘고소득 연구개발(R&D) 직군 주 52시간 규제 적용 예외’ 조항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미국이 손해 보고 있는 것은 없는지 다시 살펴보겠다며 나선 트럼프에 대응해 24일 정부 차원의 첫 논의가 진행됐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외경제현안 간담회에서 국익 최우선 원칙을 강조하며 “파급효과가 큰 사안을 중심으로 그간의 대응 방향을 재점검하고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통한 순차 대응, 기업과의 적극적인 소통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트럼프가 취임 직후 서명한 ‘미국 우선주의 무역 정책’ 각서의 파급력을 고려한 지시인데, 이 각서는 미국이 체결한 기존 무역협정을 재검토하고 적절한 개정을 권고하라는 지시가 담겼다. 구체적인 국가를 지목하진 않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 단체들도 돌파구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미 정책 컨트롤타워 구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경제인협회의 경우 트럼프 2기 TF를 운영하며 트럼프 정부의 초기 정책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23일에 긴급 간담회도 개최했다. TF를 이끄는 정철 한국경제인협회 연구총괄대표 겸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향후 100일이 한국 산업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기로가 될 것”이라며 “경제단체와 싱크탱크 등 미국 현지 파트너와 협력해 한국 경제계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한국 기업이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단장은 “민관 통합협의체를 구성해 미국 행정부에 우리 기업과 정부의 입장 및 의견을 전달하는 통일된 소통창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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