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年華] 코르크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2024-10-25

아뿔싸! 오프너를 챙기지 않았다.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분주하게 텐트를 설치하는 남편을 훔쳐보았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한 일일 것이다. 코르크를 제대로 오픈하지 못해 부러뜨리거나 부스러기가 병 안으로 들어가 당황한 기억 또한 있을 것이다. 맥주병처럼 쉽게 열 수 있는 크라운 캡이나 도구 없이 돌리기만 하면 되는 스크루 캡도 있을 텐데 왜 열기도 어렵고 잘 부스러지는 코르크를 쓰는 것일까.

와인 병마개는 지중해 연안, 특히 포르투갈, 스페인, 알제리와 같은 건조하고 바위가 많은 지역에서 자라는 코르크참나무의 수피를 이용한다. 공기주머니로 채워진 독특한 세포 구조 덕분에 뛰어난 탄성력과 압축 저항성이 있다. 불에 강하고 온도 변화와 진동에도 잘 견디기 때문에 쉽게 변질되지도 않는다. 이런 장점들은 병 속에 든 와인이 오랫동안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덕분에 장기 보관도 가능하다.

코르크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부터 병을 봉인하는 용도로 이용했다. 특히 그리스 유적에서 암포라와 함께 현재와 유사한 형태의 마개가 발견되었다. 이후 로마 시대까지 사용되었으나, 중세에는 나무 조각과 기름 적신 천이 더 일반적이었다. 이런 방법은 공기 차단이 불완전해 시간이 지나며 산화하여 식초로 변하는 경우가 잦았다. 때문에 당시에는 오래 숙성된 와인보다 신선한 것이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 17세기에 유리병 제조 기술이 발전하며 코르크는 다시 와인 병마개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때부터 숙성된 와인에 더 높은 가치를 두게 되었다.

마개의 용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와인을 보호하는 것이다. 과도하게 유입되는 공기를 적절하게 차단해 산화를 방지하고 신선도와 품질을 유지한다. 또한 외부의 먼지, 오염물질, 곰팡이 등이 내부로 침투하는 것을 막는다. 둘째는 숙성 관리이다. 고급 와인은 장기 보관 시 약간의 산소가 필요하다. 산소는 병 내부에서 와인과 접촉하며 숙성을 돕는다.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부드러운 질감과 복합적이고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생산자들은 꼭 필요한 양만 유입하고 나머지는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았고, 코르크를 선택했다.

천연코르크는 와인과 공기의 적절한 접촉을 통해 숙성을 돕는다. 고급 와인에 많이 사용되지만, 나무의 종류, 수령, 추출 부위에 따라 품질 차이가 크다. 또 큰 문제를 지니고 있다. 와인의 풍미에 치명적인 TCA(trichlo roanisole, TCA) 오염이 발생할 수 있다. 코르크에 박테리아가 번식해 특정 화학물질과 반응하면 곰팡이 냄새나 젖은 마분지 냄새가 난다. 프랑스어로는 부쇼네(bouchonne), 영어로는 콜키(Corky)라고도 한다.

합성 코르크는 천연코르크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플라스틱 또는 고무와 같은 합성 재료로 제작한다. TCA 위험이 적고, 보존 능력이 좋다. 하지만 산소 유입이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다. 병 입구를 돌려서 여닫는 스크루 캡을 이용하면 병 내부로 유입되는 산소의 양이 매우 적어 과일 풍미가 오래 유지되며 산화되는 속도가 느리다. 비교적 빨리 마시는 와인을 주로 생산하는 신대륙에서 많이 사용한다.

코르크의 길이는 보통 3~4㎝이지만, 보르도의 특등급 와인은 6㎝에 달한다. 코르크는 종류뿐만 아니라 길이에 따라서도 유입되는 공기량이 차이가 난다. 장기 숙성용은 대체로 긴 것을 사용하는데, 병을 빈틈없이 봉해 오랜 숙성기간 동안 미량의 산소만 투과시키기 위해서다. 빨리 소비하는 타입은 짧은 것을 사용한다. 여기서 하나의 맹점은 고급 와인은 긴 코르크를 이용하지만, 길이가 길다고 해서 모두 고급은 아니라는 것이다. 병의 무게나 병 아래쪽 홈 깊이가 와인 품질을 보장하지 않듯.

텐트를 세운 뒤, 남편은 바비큐 준비도 마쳤다. 테이블을 차리고 잔까지 꺼냈지만 오프너가 없다. 불 위에서 고기는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데, 과연 와인을 마실 수 있었을까.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우리에게는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맥가이버칼이 있었다. 병목에 불을 가져다 대는 것부터 신발에 넣고 쳐서 코르크가 튀어 오르도록 만드는 것까지 온라인상에 떠돌아다니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감사하는 동안, 밤이 내려앉았다.

송시내 수필 쓰는 나무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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