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걷고싶다

2025-09-18

인류는 질병과 공존해 왔다. 바이러스는 소멸과 변종을 반복한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은 지구촌을 극도의 비상사태에 빠뜨렸고, 생활의 전반이 통제되었다. 전면적인 역병의 대유행에, 대자연 앞에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이제는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올여름 무더위는 유별났다. 절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굴러간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고들고들한 '선들바람에 생의 의욕이 샘솟는다. 수확을 미룬 논에는 팬 벼 이삭이 눌눌하고, 대추나무는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풍년이다.

내 것이 아니어도 사방으로 넉넉한 들 풍경이다. 동생처럼 예뻐해 주는 선생님의 작품 전시회! 언제나 소녀처럼 해사 한 얼굴로 다정하게 곁을 내주는 이 작가의 작품에 유난히 붉은빛이 많이 보인다. 태양을 가슴에 담고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는 모습과 일관성이 있어 보였다. 전시회장의 부드러운 조명 아래 전해오는 작가의 숨결, 예술을 사랑하고 아끼는 뜨거운 마음을 읽는다. 도회적이고 저항적인 전율이 느껴지는 유화가 인상적이다. 황토색 '토우'는 친밀감을 더한다. 섬세한 표정과 움직일 듯 적나라한 동작에 손잡아 주고 싶은 충동이 인다.

수채화 '가을이 오는 소리'는 화폭 가득 가을이 풍성하게 들앉았다. 수채화가 주는 담백한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작가들은 언제나 느껍게 작업을 할까? 만족한 작업을 하면, 그의 혼이 녹아든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은 감동할 것이다.

 작가들은 제각각 의 빛깔과 모양과 품성으로 작품이라는 그릇을 통해 의미를 발산한다. 행복과 슬픔을 채색하고 고통과 즐거움을 표현하는 자기의 작품 이 결국은 그를 고뇌에서 구제해 더 높은 경지로 승화시키리라. 가을 정취가 유유하다. 일상을 쪼개 다른 이의 예술 세계를 엿보는 것도 창작하는 이의 모습일 테다.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지지부진한 자신의 열의를 일깨워 보는 것도 좋으리라. 신록만 아름다운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 알록달록한 가을이다. 주고 되돌려 받지 않는 나무의 일방적 사랑, 사방이 온통 빨강과 노랑의 계절이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기억들. 석조전의 가을 전시회, 계절이 충만한 국립중앙박물관 뜰의 구석구석, 행위예술과 거리 음악회가 끊이지 않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즐비하던 소극장들, 경복궁 앞길로 즐겨 오가던 정독도서관, 우후죽순처럼 뻗어 오른 대형 건물들 사이에서도 꽃가게의 꽃들은 다채롭고 생생했다. 이 가을이 행복하다. 열정 가득한 예술가의 붉은 가슴을, 작업 이면에 흐르는 땀과 수고를, 고뇌하고 성취하는 아름다운 손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시된 작품을 둘러보며 아직도 감동하는 고운 정서를 간직하고 있구나 싶다. 바람 부는 거리, 샛노란 은행잎이 꽃비처럼 내리는 축복을 머리에 어깨에도 받고 싶다. 이 거리를 훌훌훌 걷고 또 걷고 싶다. 작품 소개를 찾아 런던 시내를 자꾸만 걸었다는 찰스 디킨스처럼 걷고 싶다.

△ 이해숙 수필가는 '수필시대'로 등단 했다. 행촌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전북문협, 영호남수필 전북수필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수필집 <진달래 꽃술이 있다>를 출간했다. 시흥문학상과 완산벌문학상을 수상했고 현재 전북수필문학회 사무국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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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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