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로마 검투사들이 사자와 싸웠다는 물리적 증거가 최초로 발견됐다.
26일(현지 시각)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아일랜드 메이누스대학 팀 톰슨 교수가 이끄는 아일랜드·영국 공동 연구팀은 온라인 과학 저널 플로스 원(PLOS One)에서 고대 로마 검투사 유골에서 대형 고양이과 동물에 물린 듯한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2~3세기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들은 지난 2004년 영국 요크 지역의 유적지 '드리필드 테라스'에서 발견됐다. 요크는 고대 로마 도시 에보라쿰의 요새가 건설된 곳으로 검투사 유골이 잘 보존된 유적지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에게 익숙한 검투사의 모습은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묘사된 모습이다. 콜로세움에 올라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심지어는 사자, 호랑이, 퓨마 등 맹수들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러한 이미지는 모자이크, 도자기, 조각 등에 그려진 기록을 해석한 것일뿐 이를 뒷받침할 물리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는데, 이번에 유골에서 실제 증거를 확보된 것이다.
이빨 자국이 발견된 유골은 26~35세 남성으로 맹수들과 싸우는 임무를 받은 베스티아리우스(Bestiarius; 투수사)로 추정된다. 뼈는 크고 강력한 근육이 형성돼 있었으며, 어깨와 척추에는 힘든 육체 노동, 전투와 관련한 흔적이 발견됐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은 처음 이 유골의 골반 뼈에서 짐승에게 물린 듯한 움푹 파인 자국을 발견하고 이를 3차원(3D) 스캔해 자세히 살펴봤다. 이 자국을 다양한 육식동물의 이빨 자국과 비교한 결과 대형 고양이과 동물, 특히 사자의 것으로 비슷했다.
해당 검투사는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사자에게 물려서 죽었거나, 물린 상처가 원인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사후 목이 베였다. 로마에서는 장례 의식의 일부”라고 말했다.
다만 사자를 어디서 구했는지는 아직 확인돼지 않았다. 영국 요크는 사자 서식지가 아니기 때문에 연구팀은 보급로를 따라 물자와 함께 포획한 사자를 들여왔을 것으로 추측했다.
공동 저자인 존 피어스 킹스 칼리지 런던 고고학 강사는 “요크는 군단 기지였기 때문에 와인, 기름, 곡물 등 대량의 물자를 운반할 보급로가 잘 정비돼 있었다. 북아프리카에서 포획한 대형 고양이과 동물을 해로, 육로를 통해 운반했을 것”이라고 봤다.
톰슨 교수는 “로마의 검투사와 맹수의 싸움을 관람하는 문화에 대한 이해는 역사적 텍스트와 예술적 묘사에 크게 의존해 왔다”며 “이 발견은 그런 행위가 실제였음을 직접 보여주는 첫 물리적 증거로 로마 시대 오락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정의한다”고 말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