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에 꺾인 해외여행…여행업계, ‘국내·근거리’로 전략 전환
원화 약세가 장기화되면서 해외여행 시장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환율 부담이 커지자 내국인의 해외여행 수요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해외 송출(아웃바운드)에 의존해온 여행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일본과 동남아시아 등 대표적인 인기 여행지마저 예외가 아니다.
19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동남아 지역 출국자는 82만여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2% 감소했다.
일본 출국자 역시 78만여 명으로 0.5% 줄며 감소세로 전환했다. 업계는 4분기에도 고환율 여파가 이어지며 해외 송출객 감소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여행, 더 이상 가벼운 소비 아니다”
여행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수요 위축을 단순한 계절적 조정이 아닌 구조적 변화로 보고 있다.
여행업계 한 관계자는 “원화 약세가 장기화되면서 해외여행은 더 이상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소비가 아닌 신중하게 따져봐야 하는 고관여 지출로 인식되고 있다”며 “환율에 민감한 패키지여행 수요가 먼저 줄어드는 전형적인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과거에는 일본·동남아가 가격 경쟁력으로 수요를 방어했지만, 지금은 환율 상승 폭 자체가 커 체감 부담이 훨씬 크다”며 “여행 수요가 사라졌다기보다는 해외에서 국내로 이동하는 구조적 변화로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중국·국내로 눈 돌리는 여행사들
해외 패키지 여행사들은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낮고 치안 안정성이 부각되는 중국 노선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행 플랫폼 업체들은 해외여행객 이탈을 막기 위해 할인 쿠폰과 프로모션을 강화하며 ‘방어전’에 나섰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러한 가격 할인 전략이 수요를 되살리기보다는 감소 속도를 늦추는 데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행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앞으로는 체류 경험과 콘텐츠 차별화가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상품 판매 비중이 큰 홈쇼핑 업계는 보다 선명한 전략을 택했다. 해외 대신 국내 여행상품 편성을 대폭 늘리며 포트폴리오 자체를 전환하고 있다.
실제 일부 홈쇼핑사는 하반기 국내 여행상품 편성 횟수를 전년 동기 대비 220% 확대했다.
상품 구성도 다양해졌다. 주요 관광지 호텔 숙박권을 비롯해 부산·강릉·양양·여수·울릉도 등 전국 주요 관광지를 중심으로 일정이 짧고 가격이 명확한 상품들이 늘고 있다.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방송을 통해 일정과 가격이 투명하게 제시되는 국내 여행상품은 고물가·고환율 국면에서 소비자 신뢰도가 높다”며 “단기 대응이 아닌 중장기 전략에 가깝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이젠 멀리보다 ‘확실한’ 만족”
소비 심리도 달라졌다. 한 소비 트렌드 전문가는 “보복 소비가 끝난 이후 소비자들은 멀리 가는 여행보다 ‘확실한 만족’을 중시한다”며 “짧은 일정, 낮은 비용, 검증된 콘텐츠를 갖춘 국내 여행이 현재 소비 심리에 더 잘 맞는다”고 분석했다.
현장에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한 여행업계 실무자는 “소비자 문의가 ‘해외로 갈 수 있느냐’에서 ‘국내로 바꿀 수 있느냐’로 달라졌다”며 “일정은 짧아졌지만 대신 콘텐츠 완성도를 훨씬 더 따진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환율 1400원대가 여행업계에 구조 전환을 요구하는 신호라고 입을 모은다.
해외 송출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목적지 다변화와 상품 재설계 없이는 실적 회복이 쉽지 않다.
출국자 감소는 단순한 수요 위축이 아닌 환율 리스크가 소비 선택을 바꾸고 있다는 신호다. 항공·숙박·여행상품 전반에서 가격 구조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새로운 기준이 되는 ‘국내·근거리 여행’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여행과 중국 등 근거리 해외 여행지가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역관광 전문가는 “지역 축제와 교통, 식사를 결합한 상품은 지자체·여행사·유통사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모델”이라며 “고환율 시대일수록 지역 기반 관광의 가치가 부각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변화가 일시적 조정이 아닌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환율이 안정되기 전까지, 여행의 무게중심은 당분간 해외가 아닌 ‘가깝고 확실한 선택’으로 이동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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