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연일 재계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3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만났다. 이재명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 지표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이재용 회장은 재계서열 1위 회사의 회장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두 사람의 만남에 정재계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재명 후보는 최근 반도체특별법 도입을 약속하는 등 삼성전자에 유리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음을 감안하면 이재명 후보의 당선은 삼성전자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재명 후보는 과거 재벌 해체론자였다. 이재명 후보는 2017년 3월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을 앞두고 “재벌 황제 경영 해체와 중소기업 보호, 공정한 경제질서 회복, 노동권 강화, 대기업과 초고소득자 증세, 복지확대야 말로 대한민국 경제 활성화와 경제성장의 길”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의 최근 행보는 과거와 차이가 있다. 이 후보는 4월 28일 SK하이닉스 이천 캠퍼스를 찾아 AI(인공지능) 메모리 반도체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후보가 제21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최종 후보로 선출된 후 첫 공개 행보였다. 이 후보는 이날 반도체특별법 통과를 약속했다. 이 후보는 “국내에서 생산 및 판매되는 반도체에 최대 10%의 생산세액 공제를 적용해 반도체 기업에 힘을 싣겠다”고 전했다.
국내 반도체업계는 삼성전자가 1위, SK하이닉스가 2위 자리를 지켜왔다. 최근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DS(반도체) 부문 매출은 111조 원,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매출은 66조 원이었다. SK하이닉스의 매출이 삼성전자 절반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삼성전자 DS 부문 매출은 25조 원, SK하이닉스 매출은 17조 원을 넘겼다. SK하이닉스 매출이 삼성전자의 70%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이는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이 선전한 덕이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가 올해 2분기에도 좋은 실적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에 대해 “HBM3E 12단 제품 전환이 가속화됨에 따라 출하 비중이 50% 이상으로 크게 확대될 것”이라며 “12단 제품의 경우 8단 대비 단위 용량 기준 10% 이상의 가격 프리미엄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제품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현재 엔비디아에 HBM3E 12단의 인증을 진행 중이며 단품칩 인증 통과 후 완성품 패키지 인증에도 통과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알기 어렵다”며 “실패할 경우 삼성전자의 올해 HBM 판매량은 당초 예상치를 대폭 하회할 수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의 실적이 악화되면 이재용 회장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 회장 스스로도 삼성그룹이 위기에 처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회장은 3월 삼성그룹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며 “경영진부터 철저히 반성하고 사즉생의 각오로 과감히 행동해야 한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특별법 도입은 이재용 회장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재용 회장 입장에서 이재명 후보 당선이 나쁜 소식만은 아닌 셈이다.
이재명 후보가 과거와 달리 재계와의 스킨십을 늘리는 것도 삼성전자로서는 희소식이다. 이 후보는 3월 이재용 회장을 만났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반도체특별법 등을 논의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두 사람의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후보가 과거 펼쳤던 재벌 해체론을 더 이상 꺼내 들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물산에게도 이재명 후보의 당선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재명 후보가 용적률 상향, 분담금 완화 등 재개발과 재건축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공약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최근 재건축 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삼성물산은 4월 21일 장위8구역 공공재개발 시공사로 선정됐고, 이어 4월 27일 광나루 현대아파트 리모델링 시공사로 선정됐다. 삼성물산에는 현재 이재용 회장의 동생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이 근무 중이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이재용 회장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이 후보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뿐 아니라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 캠프 소속 인사들도 상법 개정안에 적극적이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월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주주에게 불리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지배주주만을 위한 고려아연·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이런 왜곡된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며 “상법 개정을 통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자본시장에 정의와 신뢰를 세우는 길에 책임지고 나가겠다”고 전했다.
재계는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4월 22일 “어떠한 법률이나 제도의 개선이 정치적 승패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을 중심으로 글로벌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이 위원장의 개인 발언이고, 삼성전자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그럼에도 삼성의 주요 인사가 발언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 내부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명 후보는 삼성전자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내 분위기를 감안하면 우호적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은 2월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검찰에 상고를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결국 검찰은 상고를 진행했고, 이재용 회장의 재판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차기 대선은 6월 3일 치러질 예정이다.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현실화되면 추후 있을 이재용 회장과의 관계 수립에 정재계 관심이 집중된다. 변수는 있다. 대법원은 5월 1일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선 전에 최종 판결이 이뤄지면 이 후보는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재상고심 절차가 대선 전에 마무리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박형민 기자
gody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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