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원고가 언제 지면에 실릴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마감일인 오늘은 2025년 1월 2일로 새해가 밝은지 이틀째 되는 날입니다. 어제인 1월 1일에는 첫 해돋이를 보기 위해 집 근처 해변에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사실 저는 인파가 몰린다는 얘기만 들어봤지 실제로 목격한 것은 처음입니다. 매일 뜨는 태양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에 수년째 동쪽 바다를 코앞에 두고도 해돋이를 직접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올해 무슨 특별한 기대가 있어 해돋이를 본 것은 아닙니다. 아내의 초대로 새해맞이 겸 강릉을 방문하신 부모님의 해돋이를 안내하려다 보니 덩달아 멋진 광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빨갛게 달아오른 태양이 수평선 너머에서 떠올라 점차 밝은 빛을 산란하기까지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지난 한 해의 소회와 앞으로의 기대를 그렸습니다. 동해안에서의 생활을 슬슬 정리하고 하반기쯤 터전을 옮길 계획을 막연하게나마 가지고 있다 보니, 이번이 집 앞 바다에서 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새해 일출이겠구나 싶어 시원섭섭한 마음이었습니다.
2025년은 제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난 몇 년간 새 가족이 생기는 과정에서 지속된 변화가 있었다면 이제는 녀석이 조만간 미운 네 살에 돌입함에 따라 생기는 좌충우돌의 변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체력과 건강상의 변화는 이미 크게 와 닿고 있어서 얼마 전부터 필라테스를 열심히 다니고 있지만 빠르게 진화하는 상대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또한, 2월 말이 되어 전임의사의 2년 경력을 채우게 되면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가족의 터전 또한 큰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심정적으로는 강릉에서의 생활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지역 특성상 공직에서의 기회는 물론이고 일반 개원가에서의 봉직의 구인조차 많지 않은 현실입니다. 거기에 아이가 아플 때 급히 찾을 소아 응급실이 없다는 점을 비롯한 중소도시 육아의 어려움이 더해지니 대도시로의 이사는 이제 기정사실이 되었습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새해 첫 태양을 맞이하는 심정이 그저 벅차지만은 않습니다. 이사를 할 때 고민해야 하는 여러 가지 것들, 아이의 어린이집을 옮기고 적응시키는 과정, 아내가 이곳에서 만든 관계들과 멀어지게 하는 미안함, 이직에 관련한 업무적인 것까지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대단히 복잡한 속사정에 아찔해집니다.
그래서 새해 소원은 그저, 잘 버티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고속열차 ‘경로’석을 타고 오신 부모님, 육아에 지쳐 본인조차 잘 챙기지 못하는 아내,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 중 어느 누구도 제가 할 일을 대신할 수는 없기에, 그럼에도 저는 때로 비빌 언덕이나 밟고 달릴 운동장이 될 수 있어야 하기에, 태산처럼 높지 않더라도 단단하게 유지되는 동산같이만 버티게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새해 첫 원고임에도 해맑은 다짐을 늘어놓지 못한 이유는, 어지러운 국내 정세부터 참담한 대재난까지의 일들을 뒤로한 채 마주한 2025년이 그리 달갑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처럼 많은 이들이 2024년을 채 마무리하지 못했겠지요. 또 언제까지고 2024년을 마무리하지 못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모쪼록 2024년을 어떻게든 뒤로 하고, 새로운 날들에 꿋꿋이 버티는 평화가, 이를 필요로 하는 분들께 꼭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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