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밤길 손잡고 걷는 사람들이 희망

2025-01-08

새 달력을 걸었다. 지난 달력을 떼어낸 자리에 걸린 새 달력은 그림도 산뜻했다. 겨울을 시작으로 봄·여름·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로 돌아오는 12장의 달력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자연의 부지런함이 느껴진다. 꽃이 피고 지고, 잎이 푸르렀다가 낙엽이 되는 시간의 부지런함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시간의 흐름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고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새해’라는 말에는 희망이 가득하다. 마치 깨끗한 도화지를 받은 죄인처럼, 새해가 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차오른다.

깨끗한 도화지 받은 죄인처럼

다시 시작할 용기 생기는 새해

올해는 죄·부채 탕감하는 희년

나 아닌 우리 위한 희망이어야

시간은 과학 이전에 종교의 영역이다. 새해 첫날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망을 빌고 또 빈다. 밤과 낮은 변함없이 반복되어도 종교마다 시간 계산법은 다르다. 역사는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누어진다. 사람들은 매달, 요일처럼 시간에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을 붙였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달력인 그레고리력(曆)은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이 어느 사제에게 제작하게 하여 만들어졌다. 넓이와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시간 앞에서 순간을 살아가는 인간은 겸손을 배운다.

가톨릭도 가톨릭만의 달력이 있다. 전례력이라고 부른다. 전례력은 세상 달력보다 한 달여가 빠르다. 보통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시작한다. 세상의 마지막 때, 깊은 어둠이 온 천지를 덮고 있을 때, 교회는 빛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음을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확인한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시는 신비를 묵상하며, 사랑은 강하고 힘센 곳이 아니라 가장 연약하고 비천한 곳에서 시작됨을 배운다.

특히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올 한 해를 희년(禧年, Jubilee)으로 보낸다. 교회는 25년마다 죄를 용서하고 부채를 탕감하는 해를 정했다.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50년마다 한 번씩 희년의 해가 돌아오면 숫염소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며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축제 기간 사람들은 모든 부채를 감면받고, 노예는 자유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 축제 기간을 희년이라 부른다. 교회가 성장하며 희년은 100년에서 50년, 25년 주기로 변경되었다.

이번 희년의 주제는 ‘희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희년의 주제인 ‘희망’을 말하며 희망은 사랑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교황은 희년 동안 세상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도움을 요청하는 절박한 호소”에 귀를 기울이자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특히 교황은 지구가 착취당하고 우리 이웃이 억압당하는 많은 상황에 대하여 우리가 목소리를 높이고 고발해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고 했다. 불의를 끊어내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교회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도 했다.

희망은 오늘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단순히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와 같은 막연한 바람이 아니다. 또한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남을 탐하는 모습은 희망이 아니라 ‘욕망’이다. 희망은 순수해야 한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실망’이 들지 않아야 한다. 내가 정한 목표를 이루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상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는다면 그건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다.

그래서 교황의 말처럼, 희망은 ‘나’만을 위한 희망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희망이어야 한다. 너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고 너의 슬픔이 우리의 슬픔이다. 내것 네것 따지지 않고 이기심을 누그러뜨리고 타인에게 기꺼이 손 뻗는 일이 희망이다. 나도 죄인이라 생각하고 다른 이를 해방시키는 일이 희망이다. 희망은 자비, 연민, 측은지심, 공감에서 출발해야 한다. 진정한 희망은 결국 나를 벗어나 너, 우리, 온 창조물을 향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벌판 어딘가에서 죽어간 젊은 북한 병사는 우리의 혈육이다. 핵발전소 폭발로 매일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일본 후쿠시마는 인류의 아픔이다. 난민이나 이주민을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이가 인류의 희망이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곁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며 위로한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내일을 살아갈 희망이다. 집회에 참여한 이들을 위하여 커피와 김밥을 선결제하거나 건물의 화장실을 기꺼이 개방한 이들의 마음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희망이다. 역사의 어두운 밤길을 걷는 이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모든 이가 바로 우리의 희망이다.

2025년 새해가 떠올랐다. 새해에는 모두 희망이 가득하여 기쁨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각자 바라는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길 빈다. 세상이 조금 더 평화로워지길 기도한다. 무엇보다 조금 더 착해지길 기도한다. 나도 그리고 우리도.

조승현 가톨릭평화방송 신문(cpbc) 보도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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