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받는 일은 어렵지 않아
추천에 맞게 사는 삶이 어려워
‘힐빌리의 노래’ 추천사 썼지만
내가 썼어라는 말이 안 나왔다
책의 띠지나 뒤표지에는 주로 추천사가 적혀 있다. 이 책이 이만큼 좋으니 보셔야 합니다, 하는 누군가의 추천이 한두 문장, 많게는 한두 문단 들어간다. 그동안 나도 수십 권의 책에 추천사를 써왔다. 사실 이건 가장 가성비가 좋은 글쓰기 중 하나다. 추천사 비용은 대중이 없는데, 나는 적게는 5만원부터 많게는 50만원까지 받았고, 누군가는 몇백만원을 받는다고도 한다. 돈을 받고 쓰는 것이니까 추천사가 아니라 주례사라고 부를 만큼 책의 좋은 점만 대개 나열하게 된다. 대부분 좋은 책들이지만 편집자나 작가와의 관계 때문에 거절할 수 없는 추천사도 많으니까 어떻게든 책의 좋은 점을 찾아야 한다. 생활기록부를 쓰는 담임교사의 심정이 이럴 듯하다.
추천사를 쓴 책이 잘되면 나도 괜히 흐뭇하다. 내가 주례를 선 부부가 잘 살고 있다고 종종 감사라도 전해오면 좋지 않겠나. 역시 내가 주례를 잘 서서 너희도 잘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다. 잘 살아야 한다고 말한 두 사람이 이혼했다는 소식을 전해오면 아무래도 미안하겠다. 내가 괜히 주례 같은 걸 섰구나.
내가 쓴, 기억에 남는 두 개의 추천사가 있다. 하나는 차인표 작가의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다. 이 책은 작년에 영국 옥스퍼드대학 필독서로 선정되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주변에 꽤나 자랑을 하고 다녔다. 그 유명한 배우가 쓴 소설에 내가 추천사를 썼고 해외에서 그런 성과까지 있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네가 그런 좋은 책에 추천사를 썼느냐고 칭찬 일색이었다.
그때 썼던 추천사는 다음과 같다. “좋은 글이 무엇인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렇게 믿고 있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그러한 나의 믿음을 또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사람을 쉽게 미워하거나 단죄하지 않고, 용서가 결국 모두의 삶을 진전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선한 마음과 태도는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지 묻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끔 만드는 아름다운 책이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면서도 가장 쉽지 않은 단어를 꺼낸다. 바로 ‘용서’다. 그것이 결국 우리의 삶을 나아가게 한다고 말한다.
기억에 남는 다른 추천사는 J D 밴스의 <힐빌리의 노래> 한국어판에 썼다. 미국 부통령이 된 그 밴스가 맞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러스트벨트의 몰락한 백인 노동자와 그 가정의 모습을 담아냈다.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여기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고, 그들의 노래를 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는 이 책이 트럼프 대통령을, 정확히는 다시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 지금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믿는다. 오히려 출간되었을 그때보다 지금 더욱 필요한 책이다.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힐빌리의 노래>를 누구보다도 깊이 읽은 한 사람으로서 트럼프가 믿는 정치적 기반이 이 책에서 말하는 백인 노동자들에게 있음을 안다. 이들은 실리콘밸리나 월가에 있는 화이트칼라들과는 다르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 말고는 다른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 타국에 과한 관세를 물리는 것도, 불법 이민노동자들을 추방하는 것도, 기후협약을 무시하는 것도 미국 제조업의, 그러니까 자신들의 부흥을 위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트럼프와 밴스는 앞으로도 힐빌리의 노래의 후렴을 완성시키기 위한 정책을 계속 내놓을 것이다.
밴스는 얼마 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회담은 지금 트럼프 시대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한 상징처럼 되어버린 듯하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 몇분을 지켜보기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내가 저 사람이 쓴 책의 한국어판에 추천사를 썼어”라는 말이 안 나오는 것이었다. 네 노래가 중요하면 남의 노래도 중요하잖아, 라는 마음이 될 뿐이었다.
우리가 누군가의 추천을 받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추천에 맞게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힘든가. 그건 정치적으로 성공하거나 어디선가 큰 상을 받는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내가 차인표 작가를 응원하는 건 그가 여전히 선한 마음과 다정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가 계속 한 시절 자신이 쓴 글을 닮은 사람으로 잘 살아가길 응원한다. 내가 그동안 쓴 책에도 여러 사람들이 추천사를 써주었다. 그들도 내가 언젠가 김민섭을 추천했어, 하고 말할 수 있게 나도 잘 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