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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의 민주주의 성숙도가 전 세계 167개국 중 32위로 전년보다 10계단 하락하며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 범주에서 탈락해 '결함있는 민주주의'로 내려앉았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27일(현지시간)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Democracy Index 2023)에서 한국은 32위를 기록했다.
EIU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비상계엄 선포와 후속 정치적 교착상태로 정부 기능과 정치 문화 점수가 하향 조정됐다"고 밝혔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시도에 따른 여파는 의회에서, 그리고 국민 사이에서 양극화와 긴장을 고조했고 2025년에도 지속할 것 같다"며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 불만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평가에서 한국의 점수는 10점 만점에 7.75점으로, 2023년 8.09점(22위)에서 하락했다. 이에 따라 2020년부터 4년 연속 포함됐던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 범주로 내려갔다.
EIU는 2006년부터 167개국을 대상으로 ▲ 선거 과정과 다원주의 ▲ 정부 기능 ▲ 정치 참여 ▲ 정치 문화 ▲ 시민 자유 등 5개 항목을 평가해 민주주의 발전 수준을 산출해왔다. 8점 이상이면 '완전한 민주주의', 6점 초과8점 이하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 4점 초과6점 이하는 '민주·권위주의 혼합형 체제', 4점 이하는 '권위주의 체제'로 구분된다.
이번 평가에서 한국은 ▲ 선거 과정과 다원주의 9.58점 ▲ 정부 기능 7.50점 ▲ 정치 참여 7.22점 ▲ 정치 문화 5.63점 ▲ 시민 자유 8.82점을 기록했다. 특히 정부 기능(전년 8.57점)과 정치 문화(6.25점) 점수가 전년보다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6년 지수 산출 이후 한국이 받은 가장 낮은 점수로, 167개국 중 9번째로 큰 낙폭을 보였다.
한편, 북한은 165위로 지난해와 동일한 순위를 유지했으며 평점도 1.08점으로 변동이 없었다. 북한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국가는 미얀마(0.96점)와 아프가니스탄(0.25점)뿐이었다.
전 세계 평균 점수는 5.17점으로, 지난해에 이어 2006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고점은 2015년의 5.55점이었다.
'완전한 민주주의'로 분류된 국가는 25개국으로, 전 세계 인구의 6.6%만이 이들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0년 전 12.5%에서 크게 감소한 수치다. 반면, 전 세계 인구 5명 중 2명은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EIU는 2024년이 선거가 많은 한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폭력 사태가 발생한 파키스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가짜 선거'가 치러진 러시아, 선거가 취소된 부르키나파소·말리·카타르 등의 사례를 지적하며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했다.
국가별 순위에서는 노르웨이가 9.81점으로 16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이어 뉴질랜드(9.61점), 스웨덴(9.39점), 아이슬란드(9.38점) 순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대만이 8.78점으로 12위를 기록했으며, 일본은 8.48점으로 16위를 유지했다. 중국은 2.11점으로 145위에 올랐으나 여전히 '권위주의 체제' 범주에 포함됐다.
미국은 7.85점으로 전년보다 한 계단 오른 28위에 올랐으나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유지됐다.
EIU는 "올해는 더 큰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 첫 달에 이미 공무원의 정치적 독립성에 도전을 안겼고 의문시되는 법적 권한의 행정명령을 쏟아냈다"고 지적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7.99점으로 26위를 기록하며 3계단 하락했고, '완전한 민주주의'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됐다. 이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조기 총선 발표 이후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며 정부 신뢰도가 낮아진 결과로 분석됐다.
우크라이나는 4.90점으로 92위, 러시아는 2.03점으로 150위에 공동 랭크되며 각각 1계단, 6계단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