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면의 역사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제목부터 군침 도는 책이다. 지은이 강명관 부산대 명예교수 역시 냉면 애호가일 테지만, 알다시피 그는 한문학의 성과를 대중화한 여러 저서로 이름난 저자다. 이 책 역시 본업에 충실하다. 서긍의 고려 견문기 『서경도감』이나 목은 이색이 차가운 국수를 먹었다는 고려말 기록, 조선 시대 『음식디미방』 『산가요록』 『(증보)산림경제』 등을 아울러 냉면 전에 국수와 차가운 국수의 역사부터 추적한다.
시대순으로 전개되는 책인데, 오늘날의 냉면을 기준으로 관심사를 다시 추리자면 그 첫째는 면. 지은이는 밀가루 아닌 메밀가루가 국수의 주종이 된 과정과 함께 국수틀의 등장과 확산도 주목한다.
둘째는 아무래도 국물. '냉면'이란 말은 조선 시대 이문건이 남긴 『묵재일기』의 1559년 4월 20일자에 처음 등장한다. 한데 이 냉면이 어떤 음식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지은이는 이후의 문헌을 토대로 동치밋국에 국수를 마는 냉면이 18세기 중반부터 등장한 것으로 추정한다.
구체적인 조리법도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이를테면 1800년대 초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는 '동치미 만드는 법'에 덧붙여 냉면 만드는 법이 나온다. 더운 국수에 쓰던 고기 장국을 냉면에 쓴 건 더 나중. 1800년대 말 『시의전서』에는 산뜻한 나박김치나 깨끗한 동치밋국에 마는 '냉면'과 함께 고기 장국을 끓여 서늘하게 식힌 다음 국수를 마는 '장국냉면'이 나온다. 지은이는 장국냉면을 "동치밋국이 바닥났을 때, 그러니까 겨울이 끝나고 날이 더워졌을 때 먹기 위한 것"이라며 "겨울의 시식(時食)으로서의 냉면이 아니라, 여름에도 먹을 수 있는 냉면을 위해 고안된" 것으로 본다. 『시의전서』가 경북 양반가 문헌이란 점은 냉면의 확산 역시 짐작하게 한다.
지은이는 조선 시대 냉면이 각 지역으로 퍼진 면면, 1700년대에도 사 먹은 기록이 나올 만큼 국수와 냉면이 상업화된 면모도 전한다. 1800년대 순조가 군직들에게 같이 냉면을 먹고 싶다며 사오라고 한 일, 철종이 냉면과 전복을 많이 먹고 급체한 일도 전해진다. 둘 다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나온다. 물론 임금이나 먹던 음식일 리 없다. 지은이는 관련 기록이 많지 않은 이유를 냉면을 먹는 것이 그만큼 범상한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책에 담긴 근대 이후의 역사는 사회사이기도 하다. 중국은 물론 러시아 연해주, 미국 하와이에도 냉면집이 진출했고 일제강점기 신문에는 냉면집 식중독 사건이 여럿 실렸다. 책은 그 당시 냉면값 인상과 인하, 배달부 면면, 면옥노조 활동, 그리고 해방 직후 각종 광고에 등장한 전국 냉면집 명단까지 아우른다.
냉면의 고향이자 성지 격인 평안도와 평양 얘기는 당연히 곳곳에 나온다. 그중 평안도 성천 출신 소설가 김남천의 1938년 글이 단연 흥미롭다. 잔칫날은 물론 정월 열나흘에 수명 길어지는 국수라며 냉면을 먹는가 하면 속이 클클할 때도,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도박에 졌을 때도 냉면을 찾는 게 평안도 사람이란다. 쉽게 따라가지 못할 경지다. 귀동냥으로 들어본 얘기의 정확한 출처를 비롯해 냉면 아는 척에 거듭 참고가 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