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나주 홍어, 풍미와 발효 언어의 차이

2025-10-10

[전남인터넷신문]발효 음식은 시간이 만드는 예술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생물의 활동, 온도와 습도 변화, 재료의 조성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긴 여정이다. 발효가 스며든 음식 중에는 김치, 된장, 젓갈, 그리고 나주 홍어까지, 한국의 밥상 위에도 즐비하다. 이들 음식은 발효의 단계마다 맛과 향이 크게 달라지지만, 이를 가리키는 체계적인 언어가 거의 없다. 우리는 대체로 “덜 익었다, 잘 익었다, 너무 익었다”라는 일상적 표현에 기대어 맛을 설명한다.

발효 정도가 섬세하게 표현이 되는 언어가 빈약하다 보니 소비자와 생산자가 발효의 상태를 공유하기 어렵고, 유통과 마케팅에서도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반면 서양의 대표 발효 식품인 치즈를 보면 사정은 다르다. 치즈는 발효와 숙성의 과정이 세밀하게 구분되고, 그에 따른 명칭과 등급 체계가 확립되어 있다.

예를 들어 체다(Cheddar) 치즈는 숙성 기간에 따라 마일드(Mild, 3~6개월 숙성), 메이추어(Mature, 9~12개월 숙성), 빈티지(Vintage, 18개월 이상 숙성)로 세분된다. 고다(Gouda) 치즈 역시 영(Young), 에이징(Aged), 익스트라 에이징(Extra Aged)이라는 단계가 있으며,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Parmigiano Reggiano)는 12개월, 24개월, 36개월 숙성 제품으로 나뉘어 판매된다.

치즈는 원유 품질, 미생물 조합, 숙성 조건(온도/습도 등), 숙성 공간의 환경 등이 맛과 품질에 큰 영향을 주는 가운데, 치즈 업계에서는 보통 숙성 기간이 오래될수록 고급 제품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강하다. 숙성 기간 자체가 곧 품질과 가격의 지표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이다. 이렇게 치즈는 숙성 단계의 언어를 통해 소비자에게 맛의 강도를 명확히 전달하고, 생산자에게는 고급화 전략의 근거를 제공한다. 나주 홍어 역시 발효의 단계에 따라 맛의 세계가 완전히 달라진다.

막 발효가 시작된 초기의 홍어는 향이 은은하고 맛이 부드럽다. 중기에는 알싸한 향과 감칠맛이 균형을 이루며, 본격적인 홍어의 매력이 드러난다. 완숙 단계에 이르면 강렬한 암모니아 향과 함께 깊은 내공이 느껴지고, 여운은 길게 이어진다. 그러나 이를 설명할 체계적 언어가 부재하다 보니 “덜 삭았다, 잘 삭았다, 많이 삭았다” 정도로만 표현할 뿐이다.

만약 홍어에도 치즈처럼 발효 단계별 명칭이 도입된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초기의 은은한 맛은 ‘여린 발효’, 중기의 조화로운 맛은 ‘무른 발효’, 완숙의 진한 풍미는 ‘깊은 발효’라 이름 붙일 수 있다.

이렇게 단계별 언어가 자리 잡으면 소비자는 홍어를 고를 때 맛의 정도를 쉽게 가늠할 수 있고, 생산자는 이를 토대로 고급화와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 숙성 치즈가 ‘빈티지(Vintage)’라는 이름으로 세계 시장에서 고급 이미지를 확보했듯, 나주 홍어도 발효의 언어를 통해 고급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 체계는 단순히 마케팅의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발효 단계를 구체적으로 구분하고 이름을 붙이는 일은 연구와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다. “여린 발효 홍어는 초심자에게 적합하다”라 거나 “깊은 발효 홍어는 미식가가 즐길 만한 고급 단계”라고 설명할 수 있으며, 발효 기간·저장 조건·풍미 스펙트럼을 데이터화하여 과학적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

치즈가 세계 미식 시장에서 언어와 체계를 바탕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듯, 나주 홍어도 체계적 명명법을 통해 세계화와 고급화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나주 홍어는 단순한 지역 음식이 아니다. 발효라는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향과 풍미, 부위마다 다른 질감이 어우러져 하나의 교향곡 같은 음식을 이룬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변화의 단계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다.

치즈가 “마일드(Mild), 메이추어(Mature), 빈티지(Vintage)”라는 이름으로 세계인의 미각에 각인되었듯, 홍어도 “여린, 무른, 깊은 발효”라는 우리말 이름으로 자신만의 체계를 구축할 때 비로소 독창성과 설득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발효 음식은 시간이 빚어내는 예술이다. 나주 홍어가 그 예술을 세계와 나눌 수 있으려면, 먼저 자신만의 언어를 갖추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나주 밥상이 단순한 구호를 넘어 소비자에게 진정한 나주의 맛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면, 맛을 설명할 수 있는 풍부한 언어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언어는 맛의 다양함과 깊이를 표현하고, 나주 음식의 개성을 드러내며, 더 나아가 지역 브랜드의 가치를 세계로 확장시키는 열쇠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와인의 바디감과 나주 홍어 풍미 미학.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08).

허북구. 2025. 프랑의 요리 맛 언어로 풀어낸 나주 홍어의 풍미.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07).

허북구. 2025. 이탈리아 음악 용어로 풀어낸 나주 홍어의 풍미.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05).

허북구. 2025. 국악의 음색으로 풀어낸 나주 홍어의 맛.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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