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커버스토리] 26주년 맞은 지포스... 'GPU' 탄생이 바꾼 컴퓨터의 미래

2025-10-09

디지털포스트 PC사랑 10월호 기획특집

3D 그래픽, PC 게임 시장의 전환점

3Dfx의 독주, 개방성 요구의 중심에 선 엔비디아

GPU의 등장, ‘그래픽도 연산의 일부’

[디지털포스트(PC사랑)=최호섭 편집위원]

1999년 10월 11일, 엔비디아가 새로운 그래픽카드를 공개했다. 이름은 ‘지포스 256’이었다. 지포스는 올해로 벌써 26번째 생일을 맞는 브랜드다. 지포스는 거의 매년 새로운 아키텍처를 내놓으며 게임 시장을 이끌어 왔고, 이제는 단순 게임이 아니라 인공지능 개발의 뿌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포스’라는 브랜드는 흔들림 없이 PC 시장을 다져 왔다. ‘그래픽카드’라고 하면 당연히 엔비디아의 지포스와 AMD의 라데온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그 과정은 매우 치열했다. 그리고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만들어 온 GPU의 발전들은 뜻밖의 인공지능을 타고 세상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지포스의 출발, 그리고 엔비디아가 어떻게 인공지능으로 시장을 넓혔는지 그 26년을 돌아본다.

2000년대 초반까지 게이밍 환경으로서의 PC는 썩 인정받지 못했다. 오락실의 아케이드 게임기는 물론이고 가정용 게임기보다 늘 한 수 아래로 꼽혀 왔다. PC는 빠르게 발전했지만 그 방향성은 게임 시장이 원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누구나 기본 규칙 안에서 관련 부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개방성은 파편화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지면서 일관성이 중요한 게이밍 환경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PC 게임은 CPU의 연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다소 정적인 장르들이 자리를 잡았고, 진행이 느리면서 많은 생각을 요구하는 전략 위주의 게임들이 큰 인기를 누려 왔다. 삼국지나 문명,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같은 긴 호흡의 게임들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게임 시장의 3D 전환 트렌드는 하나의 기회였다. 3D 게임은 연산해야 하는 데이터의 규모가 달랐다.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려내던 기존 그래픽 시장은 입체로 점을 찍기 시작했고, 실제 컴퓨터 속 공간에서 그려낸 이미지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 우리가 보는 최종 결과물이 되었다.

문제는 점을 누가 빠르게 많이 찍을 것이냐에 달려 있었다. 이 시장에 가장 먼저 뛰어든 것은 3Dfx라는 기업이었다. 이 회사가 만든 부두(Voodoo)는 ‘3D 가속기’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다. 일반적인 그래픽카드의 역할은 하지 않고, 오로지 3D 이미지를 구성하는 폴리곤과 그 위에 그림을 표현하는 텍스처만 그려냈다. 심지어 스스로 화면을 그려내지 못했기 때문에 기존 그래픽카드와 케이블로 다시 연결해야 하는 복잡한 구조까지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3Dfx는 자체적인 3D 게임 규격을 내세우면서 사실상 PC의 3D 게임의 기준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콘솔 게임기는 그래픽 칩이 한 가지로 정해지기 때문에 게임 속에 3D를 그려내는 방법에 일관성이 생긴다. 플랫폼으로 자리잡기 위한 가장 큰 신뢰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PC는 아직 그런 기준이 잡혀 있지 않았고, 3Dfx는 ‘글라이드(Glide)’라는 이름의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며 게임 개발사들이 손쉽게 3D 연산을 가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

3D 게임 시장은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했고 부두 가속기는 이전에 PC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게임들을 시장에 이끌어냈다. 툼 레이더, 퀘이크 등의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PC의 게임 시장은 이전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전체적인 PC 시장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3D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3Dfx를 쓰는 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개방성이 핵심인 PC 시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먼저 대안으로 나온 것은 바로 글라이드 에뮬레이터였다. 3Dfx의 글라이드는 부두 3D 가속기만을 위한 것이었고, 다른 칩에서는 쓸 수 없는 폐쇄적 구조였다. 대신 이를 연구해서 글라이드의 명령어 세트를 해석하는 에뮬레이팅 방식의 그래픽카드들이 선보였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성능도 부족했고, 에뮬레이팅이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답은 3Dfx’라는 인식만 심었을 뿐이다. 결국 문제는 글라이드를 대신해 게임 속에서 모든 그래픽카드가 3D를 그려내는 표준 프레임워크였고, 모두가 머리를 맞대 표준화를 하는 것이었다.

먼저 나선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95 이후, 하드웨어의 구분 없이 똑같이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게임 운영 규격을 내놓았다. 바로 다이렉트 X다. 이 안에는 3Dfx의 글라이드에 대응하는 개방형 3D 프레임워크인 ‘다이렉트 3D’가 들어있었고, 그래픽카드 제조사들과 게임 개발사들은 이를 이용해서 게임 환경을 통일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3Dfx의 부두는 성능이 뛰어났고, 게임 개발 과정이 매끄러웠다. 또한 정해진 칩 한 가지만 쓰기 떄문에 게임기에 못지 않은 단일 플랫폼 구조가 됐기 때문에 최적화가 쉬웠다. 소비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반면 다이렉트 3D는 불안정했고, 이제 막 시장에 뛰어든 3D 그래픽카드 시장은 성능이나 최적화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 그래픽카드 제조사들도 3Dfx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1999년 3Dfx가 본격적으로 고성능 통합 그래픽카드 시장을 노려 만든 ‘부두3’는 이 균형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3Dfx는 칩을 개발, 생산해서 각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에게 공급해 왔다. 3Dfx는 개별 제조사들을 통해서 완제품이 생산, 유통되는 흐름을 깨고 직접 완제품 그래픽카드를 만들어 팔기로 했다. 칩이 잘 팔리니, 아예 완제품을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면 수익이 늘어날 것으로 본 것이다. 사실상 독점 구조에 가까웠던 칩 공급 시장을 그래픽카드 시장 전체로 넓히려던 것이다.

이는 당연히 시장의 반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동안 3Dfx에서 칩을 받아서 제품을 만들던 제조사들은 독점 공급에 반발했고, 인기에 힘 입은 독점 구조로 부두3의 가격이 높게 책정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AMD에 인수된 당시 ATI가 일부 상위 라인 제품들을 직접 그래픽카드로 제작해서 공급하던 것을 따라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이는 시장 전체가 다른 대안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된다.

엔비디아는 가장 좋은 대안으로 꼽혔다. 1997년을 기점으로 등장한 수많은 3D 게이밍 그래픽 칩셋들 중에서 엔비디아의 칩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다이렉트 3D에 가장 최적화되어 있었고, 성능도 뛰어났다. 아날로그 방식의 CRT 모니터가 지배하던 당시에는 색감이나 선명도 등 화질이 아쉽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3D 그래픽 연산 성능은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8년 등장한 ‘리바 TNT’ 시리즈는 글라이드 기반의 부두 그래픽카드에 맞설 다이렉트 X 기반 그래픽카드 중 최고로 꼽혔다.

그리고 1999년 10월 11일에 등장한 ‘지포스 256’은 단숨에 그 분위기를 뒤집었다. 지금 돌아보면 엔비디아는 놀라울 정도로 그래픽카드가 가야 할 방향성이 무엇인지 그 초점을 정확히 잡았고, 이를 시장에 설명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바로 ‘GPU’라는 개념이다.

지포스 256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컴퓨터의 연산은 모두 CPU가 맡아서 처리했다. CPU는 ‘중앙처리장치’를 뜻하는 말이다. 메모리나 저장장치 등 ‘폰 노이만 방식 컴퓨터’의 모든 구조는 이 CPU가 연산을 잘 처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존재했다. CPU는 운영체제를 띄우고, 그 위에서 응용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모든 과정을 맡았다. 3D 가속 카드 등장 이전에는 게임의 처리도 모두 CPU가 맡았고, 그래픽카드는 그 계산 결과를 모니터에 이미지로 뿌려주는 정도의 역할을 맡아 왔다.

좋은 컴퓨터의 기준은 어떤 CPU를 썼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었고, 이 시장을 이끌던 인텔은 CPU의 미세 공정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가며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넣고 처리 속도를 높여 PC 성능을 높였다. 컴퓨터를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Hz로 대변되는 처리 속도에 있었다.

하지만 지포스 256이 등장하면서 ‘그래픽 처리 유닛(Graphic Process Unit)’를 줄인 GPU의 개념이 세워졌고, CPU가 하던 일 중에서 3D 그래픽과 관련된 처리를 대신, 그리고 더 전문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져보면 이미 3Dfx가 부두 칩을 내놓을 때부터 ‘3D 가속기’라는 분류가 생겨났고, CPU가 버거워하는 반복적 폴리곤 생성을 거들어주는 것만으로 게임의 질은 한결 좋아졌다.

엔비디아는 지포스 256을 내놓으면서 화면을 자유롭게 회전하고, 빛을 자연스럽게 비추는 T&L 기능을 하드웨어로 처리하면서 게임 이미지를 그려내는 과정에서 CPU의 짐을 덜어냈다. 이 때부터 GPU는 특정 연산에 있어서 CPU보다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소비자들에게 심어 주었고, 이후로도 세대를 거듭하며 차근차근 CPU의 일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특히 지포스 256은 강력한 성능을 바탕으로 시장에 등장했고, 여전히 칩 공급 중심의 비즈니스를 통해서 그래픽카드 시장에 빠르게 파고 들었고, 부두3를 대신해 전 세계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이 주력 제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다이렉트 3D를 비롯한 다이렉트X도 자리를 잡았고, 지포스 256의 가장 큰 특징인 하드웨어 T&L을 소프트웨어적으로 끌어들이면서 PC 게임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엔비디아는 지포스 256을 통해서 3D 그래픽이 CPU보다 GPU에 더 의존적인 영역이고, 그래픽 시장이 기존의 가속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라는 출발점을 찍었다.

이후 경쟁사인 ATI도 ‘비디오 처리 유닛(Video Process Unit, VPU)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지만 엔비디아가 내세운 GPU의 개념이 훨씬 포괄적인 개념으로 꼽히면서 이내 사라졌고, 현재 GPU는 엔비디아만의 용어보다는 그래픽 칩셋의 일반적인 명칭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지포스 256 출시 후 딱 1년만에 엔비디아는 가장 큰 경쟁사였던 3Dfx를 인수한다. 독점 구조 속에서 안주했던 3Dfx와 달리 개방성과 반도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제품을 내놓았던 당시 엔비디아는 후발주자였지만 독보적인 성장을 이어간다.

하지만 지포스 시리즈의 GPU 진화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3세대 제품인 ‘지포스 3’는 프로그래머블 셰이더를 넣으면서 CPU의 역할을 더 가지고 나오게 된다. 게임 개발사는 간단한 셰이더 프로그램을 GPU의 셰이더 유닛을 통해 직접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GPU는 다양한 연산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진짜 연산 처리 장치로서의 GPU가 출발하게 된 것이다.

이후 2006년 엔비디아는 ‘지포스 8’과 함께 이 개념을 크게 확대한다. 바로 통합 셰이더 아키텍처, 그리고 이를 운영하는 스트리밍 프로세서의 개념이다. 이 때부터 GPU는 폴리곤 연산이나 T&L처럼 특정 연산만을 위한 구조가 아니라 버텍스, 픽셀, 지오메트리 등 사실상 필요한 모든 연산을 처리할 수 있는 범용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개별 처리 유닛을 여러 개 묶는 구조를 갖는다. 엔비디아는 이에 ‘쿠다(CUDA) 코어’라는 이름을 붙인다. 지금 인공지능 시장을 움직이는 쿠다 컴퓨팅의 시작이 이뤄진 것이다.

엔비디아는 쿠다 컴퓨팅을 게임 외의 영역으로 확장해 사진이나 동영상 편집, 그리고 엑셀 스프레드 시트 처리 등으로 그 영역을 넓힌다. 따져보면 GPU는 단순 반복되는 연산, 특히 행렬 연산에 강점을 갖고 있는데, 엔비디아는 이를 GPU 컴퓨팅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연결했다.

물론 초기에는 기대만큼 높은 성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128개 내외의 쿠다 코어는 CPU와 견주어 큰 차이가 없었고, 아직 대중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들의 안정성도 높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업무용 PC에 고성능 ‘게이밍 그래픽카드’를 넣는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이를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AMD도 이에 맞서는 ‘오픈CL(OpenCL)’ 개념을 내놓았지만 오히려 개방성이라는 강점이 ‘누구의 것도 아닌 표준’이 되면서 흐지부지해졌다. 하지만 엔비디아가는 꾸준히 쿠다를 개발해 왔다.

그리고 그 기회는 우연히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온다. 바로 비트코인을 필두로 하는 암호화폐다. 암호화폐 채굴은 복잡한 블록체인의 암호화를 계산, 검증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단순한 계산에 셀 수 없이 많은 수치를 넣어서 정확한 답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GPU는 별다른 장치 없이도 수많은 스트리밍 프로세서를 통해 이 과정을 반복할 수 있었다. GPU의 병렬 컴퓨팅에 대한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주목받기 시작한 머신러닝, 그리고 트랜스포머 모델 역시 GPU를 통해 답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수 십 년 동안 논문 속에만 숨어 있던 이 인공지능 모델 이론은 그 동안 컴퓨팅 성능의 한계로 실질적인 효용성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병렬 연산에 특화된 GPU의 구조는 이 인공지능 기술을 현실화 했다. 특히 연산 처리량이 곧 학습과 추론의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면서 더 많은 GPU에 대한 수요가 일어났고, 이를 위한 AI 슈퍼컴퓨터까지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의 엔비디아다.

돌아보면 지포스 256의 등장 이후 26년이 지나가는 사이 컴퓨터 성능의 중심은 CPU에서 상당 부분 GPU로 넘어가고 있다. 컴퓨팅은 ‘빠르게’에서 ‘많이’로 요구 사항이 달라지고 있고, 엔비디아는 GPU, 혹은 그래픽카드 형태가 아니라 하나의 컴퓨터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엔비디아는 여전히 게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하지만 지포스의 26년이 만들어 낸 역사는 결국 ‘GPU’라는 새로운 컴퓨팅 개념의 전환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엔비디아의 GPU만이 인공지능의 유일한 답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인공지능 시대의 기준이 쿠다 연산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중앙 처리장치’라는 고정 관념을 깨고, 그래픽 연산이 범용 컴퓨팅에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대한 것은 엔비디아로서도, 또 컴퓨팅 환경으로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당시에는 이 정도까지 예측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트리밍 프로세서의 가능성을 현실로 이끌어 낸 엔비디아의 노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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