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관세·보복 폭탄에 폭탄…트럼프 시대, 우리에 얼마나 많은 비극을 만들어낼까

2025-04-06

[주간경향] 3월이지만 여전히 눈 덮인 누크(Nuuk), 흰색과 빨간색 바탕에 동그라미가 교차하는 깃발을 든 사람들이 모여 소박해 보이는 붉은 건물을 에워쌌다. 덴마크의 자치지역 그린란드의 주도인 누크는 면적이 49㎢에 인구는 2만명밖에 안 된다. 올라 욜슨이 주관한 15일의 시위에 무려 3000명이 모였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합병”을 주장하는 것에 분노한 욜슨과 시민들은 미국 영사관을 에워싸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주민 85%, 트럼프 주장에 반대

6만명 조금 못 되는 그린란드 주민 대부분이 북극권 원주민인 이누이트 혹은 이누이트와 유럽계의 혼혈이다. 이 섬 사람들은 오랫동안 덴마크 정부와 싸워 자치권을 늘려왔고, 우라늄을 비롯한 광물 자원을 외지인들이 가져가고 환경마저 망치는 것에 저항해왔다. 그런데 느닷없이 미국 대통령이 자기네 땅을 갖겠다 하니 분노한 것이 당연하다. 트럼프의 느닷없는 발언들은 그린란드를 이전보다 더 덴마크 정부와 묶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지난 3월 28일 취임한 옌스-프레데릭 닐센 총리는 “우리는 미국인이나 덴마크인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도, 주권국가가 될 때까지는 덴마크와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를 총리로 앉힌 3월 11일의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 또한 트럼프의 발언이었다. 늘 덴마크로부터의 독립 여부가 이슈였던 이 섬에 트럼프라는 폭탄이 떨어지자 주민들 대부분은 욜슨처럼 분노하고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한 여론조사에서 주민 85%는 트럼프의 주장에 반대했지만, 6%는 미국에 합쳐지는 걸 원한다고 했다. 어떤 이는 외국 언론에 대고 “미국에 병합되면 부동산 개발과 관광 붐을 기대할 수 있다”면서 드러내놓고 지지하기도 했다.

취임한 지 불과 두 달여 만에 트럼프는 세상을 뒤집어놨다. 그 뒤집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백악관 근처에도 못 가본 지구 반대편 사람들을 비롯해 하필 트럼프 집권 시기를 버텨내야 하는 세계의 모든 사람이다. 영국 뉴스채널 스카이뉴스는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에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을 때 케냐를 찾아갔다. 하수가 흘러내리는 나이로비의 비좁은 골목길에서 보건요원들이 집마다 찾아다니며 순회진료를 한다. 방 한 칸짜리 집에서 HIV(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양성인 한 여성이 자신과 돌배기 아들을 위해 매일 보건요원들에게 약과 식료품을 지원받는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돈으로 구입한 것들이다. ‘아프리카 HIV와의 전쟁 최전선’에서 일하는 이들은 국제개발처 예산과 직원을 줄여 사실상 무력화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을 ‘생물학적 전쟁’에 비유했다. 케냐는 연간 8억5000만달러 정도 미국 국제개발처의 원조를 받아왔다. 트럼프 정부는 일단 90일간 국제개발처 예산 집행을 보류해놓고 그 기간 동안 ‘검토’를 할 것이라고 한다.

트럼프가 보기엔 보탬도 안 되는 일에 미국인들의 세금을 퍼주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국가 간 관계가 일방적인 호의에 의해 유지되는 일은 없다. 미국은 케냐가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64년 수교했다. 케냐는 동아프리카의 비즈니스 허브로서 미국 기업들의 투자가 집중된 곳이다. 미국은 ‘아프리카 성장기회법(AGOA)’을 통해 관세 혜택을 줘왔고, 케냐는 소말리아에 근거지를 둔 이슬람 극단조직 알샤바브 같은 테러단체와 싸우며 지역 안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양국 관계는 케냐의 발전에도 도움이 됐고, 미국의 지역 전략 목표와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런 협력 덕분에 유지돼온 앤 같은 이들의 목숨이 이제 바람 앞의 등불이 됐다.

역설적이게도 트럼프는 케냐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케냐 동부 해안에는 그럭저럭 잘사는 무슬림이나 인도인들이 많지만, 내륙의 가난한 이들 다수는 아프리카계 기독교인들이다. 이들은 젠더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보수적인 입장’에 공감을 표해왔으나, 갑자기 원조를 줄이겠다는 것에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서부 도시 키수무에 살며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는 피터 건데이라는 남성은 스카이뉴스에 “우리가 미국 원조에 덜 의존하고 자립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는 갑작스럽다. 잠깐만이라도 우리에게 올리브 가지를 내밀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러시아와 1300㎞에 걸쳐 국경을 맞댄 핀란드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경수비대 지원자가 크게 늘었다. 그뿐 아니라 곳곳에 사격장이 생겨났다. 불안이 커진 시민들이 뭐라도 자구책을 마련해보겠다며 사격을 배우는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북유럽의 복지국가, 자작나무 숲과 산타클로스의 나라 핀란드는 안보 중심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고 있다. 헬싱키타임스는 4월 1일 핀란드 정부가 향후 4년간 국방비 지출을 늘려 국내총생산(GDP)의 3%로 끌어올릴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나토 회원국들에 방위비를 더 내라고 압박해온 미국에는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핀란드는 대인지뢰금지협약(오타와협약)에서도 탈퇴하기로 했다. 살상무기 중에 윤리적인 것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전쟁 무기들이 민간인을 덜 괴롭히게 하기 위해 세계가 애써왔다. 민간인을 겨냥한 대표적인 무기인 대인지뢰를 없애기 위해 국제사회가 수십년 노력 끝에 힘겹게 만든 것이 1997년의 오타와협약이었다. 트럼프는 1기 집권 때인 2020년 대인지뢰의 제한조건을 대폭 완화해 비난을 받았는데, 트럼프와 푸틴의 시대를 맞아 인권을 중시하던 나라들도 다시 지뢰밭으로 들어가고 있다.

각별한 이웃 캐나다와 멕시코를 겨냥한 관세 폭탄, 중국에 대한 무역 보복, 유럽과 아시아와 브릭스 국가들을 향한 관세 위협,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와 가자지구에 대한 느닷없는 ‘영토적 야심’ 등 트럼프가 취임 뒤 쏟아낸 조치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나라가 160개국이 넘는다고 한다. 어떻게 집계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실상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나라가 없을 것 같다. 그린란드 사람들처럼 공동체 전체가 위태로워진 경우도 있겠고, 미국 유학길이 막혔다든가 ‘미국의 소리(VoA)’ 방송 프로그램이 중단돼 소득이 줄어드는 식으로 개인적인 타격을 받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남의 나라에 베풀던 것을 줄이고 남의 것을 빼앗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조치들, 미국인들에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부자들이야 세금이 줄어 좋을지 모르지만, 연방정부에서 쫓겨나고 사회복지 혜택에서 밀려날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연방정부의 해고 바람을 얼마 전 정리해 실었다. 최대 규모의 감원이 예정된 곳은 보건복지부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장관이 1만명을 줄이려 한단다. 무려 부처 전체 인력의 4분의 1을 줄이는 것이다. 과거 버락 오바마 정부가 미흡하게나마 늘려놓은 건강보험을 트럼프 1기 정부는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퍼지고 국민의 반발이 커서 아예 없애지는 못했다. 이번엔 보건복지부 밑에 ‘건강한 미국 부서’라는 새 부서를 만들고, 차관보 한자리를 늘려서 건강보험을 손볼 모양이다. 보건의료 업무를 해온 지역사무소 5곳을 닫는다니 가뜩이나 악명 높던 미국의 의료체계는 이제 어떻게 될까. 식품의약국(FDA) 직원 15%,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직원 18%를 줄인다고 하니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감염병 대응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 기후·해상 연구에서 세계를 선도해온 국립해양대기청(NOAA)도 대대적인 감원에 들어갔는데, 이러다가 허리케인 재난이 일어난들 어차피 트럼프는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다. 연방재난관리청(FEMA) 또한 직원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없애버리고 싶다”고 전부터 말해온 사람이니 말이다.

고용기회균등법 무시하고 해고 ‘폭탄’

미 국방부는 인턴 5400명을 지난 2월부터 내보내기 시작했는데 연방항소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법원 판결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방부는 앞으로 달마다 6000명씩 직원을 줄인다고 한다. 교육부는 직원 절반인 2000명의 해고 절차에 들어갔다. 해고가 문제가 아니라 부처 자체가 트럼프와 극우파 측근들의 맹공격 속에 없어질 판이다. 중앙정보국(CIA)은 ‘다양성 직원’들과 인턴들을 2월부터 몰아내고 있다. 이런 선별적·차별적인 해고를 하면서 더 이상 눈치를 볼 필요조차 없어진 나라가 미국이다. 트럼프가 내지른 조치 가운데 미국의 역사를 뒤집은 게 있다면 바로 고용기회균등법을 무시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인권운동의 성과를 상징하는 것 중의 하나가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대통령령 11246호’였다. 고용을 할 때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국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이 조치는 현실에서는 비록 흠이 많았을지 몰라도 ‘기회의 평등’이라는 이상을 공식적으로 보장한 역사적인 선언이었다. 그런데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노동부 안에서 고용기회균등을 담당하는 부서 직원을 10%만 남기려 한다는 것이다.

미국인들 스스로 뽑은 대통령에 의해 폭탄을 맞을 사람들이 연방정부 직원들뿐일까. 캐나다 상공회의소가 최근 ‘캐나다와의 무역전쟁에 가장 취약한 미국 도시’를 분류했다. 대부분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를 도와준 낙후된 산업지대 도시들이다. 캐나다로의 수출 의존도가 가장 높은 샌안토니오와 디트로이트가 제일 윗자리를 차지했다.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의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이 무역전쟁의 직격탄을 맞을 판이다. 미국인들 스스로 선택한 대통령이니 부메랑을 맞는다고 해도 그린란드나 파나마 사람들보다는 덜 억울해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뒤집어쓰는 것은 뭐가 됐든 옳지 않다.

얼마 전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난 한 소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히스패닉 이민자들을 미국의 적으로 몰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던 소녀였다. 한국의 어떤 야당 정치인은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고 한다. 멕시코 출신 가난한 이민자에게 나쁜 정책은 나에게도, 누구에게도 나쁘다. 트럼프 시대는 얼마나 많은 비극을 만들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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