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대선, 이념 아닌 경제로 승부내야

2025-04-06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직후 찾은 서울 한남동 관저 인근은 정권의 종말에 좌절한 이들의 거친 절규와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흥미로웠던 점은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한미 동맹, 자유민주주의, 반중 등 이념적 상징물로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관세 폭탄 등 최근 일련의 미국발(發) 경제 악재가 그들에게 후순위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장면이다. ‘내란수괴 단죄’ 같은 구호만 요란할 뿐 경제에 대한 불안 등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은 탄핵 찬성 집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2월 3일 윤 전 대통령의 명분 없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맞닥뜨린 새로운 국제 질서와 경제 문제에 둔감해진 한국 사회의 단상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연쇄 탄핵으로 국가 기능이 이미 상당 부분 마비된 상태였으며 대통령 체포, 기소, 탄핵 심판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지자 국민들의 시선은 내부 정쟁에 쏠렸다. 탄핵 찬성·반대 집회에는 정파·이념적 구호만 넘쳐났고 국민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상대편을 증오했다. 혼란이 넉 달 넘게 이어진 탓에 국정 공백 상황도 어느덧 무덤덤해졌다.

그 사이 환율과 주가는 널뛰기를 했고 소비는 얼어붙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전기차 등 첨단 산업 경쟁력과 경제성장 동력도 크게 저하됐다. 설상가상 올 1월부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광인(狂人) 전략’으로 세계 경제를 쉬지 않고 흔들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 25%의 고율 관세까지 매겼다. 어렵사리 체결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일순간에 무력화됐다. JP모건을 비롯한 미국 월가의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대까지 낮췄다. 국가 경제가 풍전등화 신세에 처했는데도 윤 전 대통령은 끝내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더 큰 걱정은 여야의 차기 대권 주자 가운데에서도 경제통이나 외교통상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양당의 극단적 지지자들은 법조인·사회운동가 등 시대정신과 동떨어졌거나 진영 싸움에 능숙한 인물들로 선택지를 좁히고 있다. 실용 노선의 중도층이 기꺼이 표를 줄 만한 후보군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다 대선 때 소모적인 부정선거 논쟁이 부각할 수 있다는 점도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신냉전 구도가 흐지부지된 지금은 이념을 초월한 각자도생의 시대다. 6월 초 대선을 계기로 현실 경제 문제에 국가적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자유무역의 파수꾼 역할을 포기하고 안보까지 돈으로 계산하는 미국, 물리적 팽창에 몰두하는 중국·러시아 등 이전과 전혀 다른 국제 질서 속에서 기업가적 전략을 세우고 실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케케묵은 1970년대 산업화식 경제관이나 1980년대 운동권식 국제관,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 등을 앞세워서는 안 될 것이다. 경제가 정치에 발목을 잡히고 국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실패의 경험’은 이만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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