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미국의 심장 워싱턴 곳곳엔 2m가 넘는 철재 벽이 세워져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철벽의 종착지는 백악관이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반대하는 자국 국민들을 차단하기 위한 ‘철옹성’을 쌓았기 때문이다.

평소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던 백악관 앞 도로엔 무장 병력이 배치됐다.
경호 요원들은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통행이 제한된다”고 했지만, 정작 백악관엔 트럼프 대통령은 없었다. 관세폭탄을 던진 바로 다음날인 지난 3일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직행해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내내 골프를 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를 조롱하듯 소셜미디어에 드라이버 샷을 날리는 동영상을 직접 올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골프장에서 동반자들이 외치는 ‘굿샷(good shot)’ 연호에 심취해 있던 사이 뉴욕증시의 시가총액 6조 6000억 달러(약 9645조원)가 증발했다.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부담에 내몰린 서민 60만명은 거리로 나서 50개주 전역에서 진행된 반(反)트럼프 시위 ‘손을 떼라(hands off)’에 참여했다.

철장 사이로 멀리 보이는 백악관을 한동안 바라보던 패트리스 볼러는 “나도 어제 워싱턴 집회에 참석했는데 트럼프는 끝내 철장까지 세워 귀를 닫았다”며 “트럼프 때문에 시민들의 인권과 권리가 매일 도전받는 상황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에 대해 “절대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난센스”라고 했다. 그러면서 “무역은 물론 경제에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악영향을 끼쳐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들과 백악관을 찾았다가 철창에 가로막혀 발길을 돌리던 터널 챈스는 “관세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는 말은 부자와 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구호”라며 “나 같은 서민들에게 미국은 한 번도 위대한 적이 없었고, 트럼프가 돌아온 뒤 끔찍한 일만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그 역시 관세가 트럼프의 정책 중 가장 나쁜 선택이라고 했다. 챈스는 “관세는 결국 없는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더 내야 하는 세금에 불과하다”며 “트럼프의 모든 정책은 서민과 중산층이 아닌 부자와 권력자, 영향력이 있는 대기업 CEO들만이 더 큰 힘을 얻기 위한 속임수”라고 했다.

미국 전역이 관세 정책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였을 때 SNS에 “버티라”는 짧은 글을 올렸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늦게 골프장을 떠나 워싱턴으로 복귀했다. 상호관세 발표 이후 4일만에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기자들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고, 주가 폭락에 대해선 “때때로 무언가를 고치려면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에 대한 강한 반발 여론에도 “관세가 수십억 달러를 미국에 가져올 것”이라며 “대(對)중국 무역 적자 1조 달러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협상하지 않겠다”고 했다. 관세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유럽연합(EU)에 대한 무역 적자를 거론하며 “유럽은 미국으로부터 많은 돈을 벌고도 미국을 나쁘게 대우한다”며 “우리는 그렇게 하면서 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돈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쓸 수 없다”고 강조했다.
EU가 무역흑자 규모를 줄이지 않으면 동맹 안보에서 손을 떼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말로, 이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에도 언제든지 같은 방식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한국에 대한 25%의 상호관세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를 비롯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동맹국 중에서 가장 높다.

이에 대해 맥 셸리 아이오와 주립대 교수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관세 정책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국내 문제인 동시에 국제 문제”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관세를 통해 나토의 핵심 요소를 뒤흔들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다른 다국적 동맹 구조나 한국 등 개별 동맹국과의 관계에서 관세를 협상 카드로 제시할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