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에 사는 교민 유재현씨(51)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선고 한 시간 전인 지난 4일 오전 3시(현지시간)로 알람을 맞춰두고 잠에서 깼다. 유씨는 ‘윤석열 탄핵’을 바라는 교민 대화방에 화상대화방을 만들었다. 새벽시간대였지만 8명의 교민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유씨는 이들과 함께 긴장하며 고국의 헌재 결정에 눈과 귀를 세웠다.
오전 4시22분 “피청구인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내용이 흘러나오자 유씨는 새벽임에도 소리를 질렀다. 컴퓨터 화면 너머에는 눈물을 흘리는 교민도 있었다. 유씨는 “교민들의 마음도 한국 광장에서 소리 질렀던 분들의 마음과 같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탄핵 촉구의 촛불을 들었던 교민들에게도 ‘윤석열 파면’ 소식은 학수고대하던 뉴스였다. 독일 뮌헨의 유씨,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강빛나래씨(38), 프랑스 파리의 박성진씨(56)는 유럽 현지의 촛불 집회를 연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나라의 각 지역에서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독일 교민들은 뮌헨 오데온 광장에서, 프랑스 교민들은 파리 에펠탑 앞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지난달 말까지 집회를 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교민들이 지난 2월 아일랜드 교민들과 함께 돈을 모아서 ‘붕어빵 트럭’을 경복궁 앞으로 보내기도 했다. 독일 교민들은 독일 공영방송 아에르데(ARD)와 체트데에프(ZDF)가 운영하는 정책·시사전문 TV 채널 ‘푀닉스’에 ‘계엄 옹호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는 것에 대한 항의 활동도 했다.

교민들은 헌재 결정이 예상보다 늦어지자 “속이 탔고, 불안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윤석열 석방’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미임명’이 가장 답답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해외에서는 비상계엄 선포 소식과 해제 소식이 동시에 알려지면서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했다’는 평가가 많았다”며 “하지만 윤석열 석방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 정치의 불안전성이 커지고,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반응들이 나와 씁쓸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상황을 보며 분노했다”고 말했다.
교민들은 “윤 전 대통령 파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씨는 “윤석열이 내란 사태를 일으킬 수 있도록 뒷받침했던 잔당들이 단죄되지 않으면 다시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윤석열이 파면돼도 아직까지도 마 후보자 임명을 하지 않고 있는 반헌법적 행위가 해소되지 않았다”며 “내란에 동조했던 세력에 대한 철저한 처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이 민주주의 위기를 겪고 있는 세계 각국에 한국 시민이 전하는 연대의 메시지가 됐다는 평가도 했다. ‘윤석열 파면’이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이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유씨는 “독일 언론에서는 트럼프를 비롯한 세계의 ‘극우 정치’에 대해 시민들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본보기를 한국이 보여줬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와중에 ‘반민주적 대통령’을 막을 수 있는 힘을 한국 시민들이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 이후에는 “갈라진 틈을 메우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고도 짚었다. 강씨는 “민주주의의 토양이 생기려면 차이를 견디고 대화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며 “너무 긴 시간 일하는 한국인들에게 ‘토론할 여유’를 찾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씨는 “전 정권을 거치면서 여성·장애인·이태원 유가족 등 마음의 상처가 생긴 사람들이 많다”며 “이들의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