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채 상병 사건 등···윤 정부서 고통받은 이들이 해낸 “윤석열 파면”

2025-04-06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3년간 곪아간 사람들이 있다. 국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동안 소중한 이들에게 사람이 스러졌고 이들은 안전을 위협받았다. 그래서 광장에 뛰쳐나와 “윤석열 파면”을 외쳤다.

헌재에서 ‘윤석열 파면’ 결정이 나온 지난 4일 이들을 만났다. 윤석열 정부 동안 국가에 의해 사람을 잃고 탄압받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 해병대 예비역, 시민사회 활동가 등이 그 주인공이다. 헌재가 파면 결정문을 한 문장씩 읽어내려갈 때마다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눈물을 흘렸고, 결국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 고 이남훈씨의 어머니 박영수씨(57)는 탄핵이 되면 호탕하게 웃겠다고 했다. 참사 후 웃을 여유도 없었고 웃어도 죄스러웠다. 그런 그는 “파면”이란 단어를 듣자 만세를 한 번 하곤 연신 눈물을 닦아내느라 바빴다. “파면이라는 짧은 글자와 달리 아이를 잃은 후 싸워온 시간이 참 길었다는 생각에 갑자기 울컥했다”고 말했다.

지난 3년의 시간은 그에게 ‘속에서 천불이 난다’는 말의 뜻을 가르쳤다. 박씨는 “이 정부는 참사 후 유가족을 다독이기보다 악의적인 표현을 쓰면서 유가족이 숨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며 “국가에서 지원을 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사과도 한 마디 없으니 해를 거듭할수록 트라우마는 심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는 숨지 않았다. 국회로, 거리로 나가 “진상 규명”을 외쳤다. 오체투지도, 삭발도 했다.

지난 3개월은 생애 가장 힘든 겨울이었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이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민주노총 간첩단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이태원 참사 반정부 시위 등 활동을 했다”고 발언한 날엔 한숨도 못 잤다. 그나마 시민들과 광장에서 함께 한 시간이 큰 위로가 됐다.

박씨는 “오늘만큼은 아들한테 ‘엄마가 이만큼 했다’고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정부가 (우리를) 비난하고 진실을 감추려했던 핍박을 견디지 못했다면 오늘 같은 날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 숨김없이 상황을 공개하는 국가, 책임자를 엄중하게 처벌하는 국가, 더는 국민의 생명이 희생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마련하는 국가를 앞으로 기대한다.

“채 상병 사건은 탄핵의 시작이었다”

파면 소식이 들리자 60여명의 해병대 예비역들이 벌떡 일어났다. 샴페인도 터트렸다. 이들은 “정말 고생했다” “칠십 평생 가장 기쁜 날” “해병대는 끝까지 간다”라고 울먹거리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2023년7월 경북 예천에서 수해복구 작업 중 사망한 채모 상병 순직 이후 진상규명의 시계는 멈춰 있었다. 그동안 정부는 ‘채 상병 특검법’에 세 번의 재의요구(거부권)를 행사했다.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우리가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던 건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채 상병 사건을 덮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계환(당시 해병대 사령관)을 비롯한 해병대와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이종섭(전 국방부 장관) 등 군 인사들이 다 처벌받고 해병대의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고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채 상병을 잊어갔다. 예비역들은 특검법을 거부하는 정부와 싸우듯 세간의 망각과도 싸웠다고 했다. 정 회장은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 항명죄 혐의 재판이 이달부터 서울고법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이 역시 잊힌 것 같다”며 “많은 국민, 특히 해병대 예비역들의 참여도가 전체적으로 저조한데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해병대 예비역 조우영씨(79)는 “채 상병 사건은 탄핵의 시작이었다”며 “특검법을 반드시 의결하고 명명백백 죽음의 진실을 밝혀야만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이우설씨(72)는 “탄핵 인용은 채 상병 사건의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고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었다.

“회복엔 시간이 배로 들겠지만···계엄을 막고 탄핵을 한 건 우리니까”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 전 대통령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구조적 성차별이라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명제”를 깡그리 무시하는 국가 원수의 말에 화가 나기보다는 놀랐다고 했다. 그런 윤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 양이 대표와 옆에 있던 활동가 길벗(활동명)은 눈물을 닦아주며 서로 축하했다.

윤 전 대통령은 재임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외쳤고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면 숱하게 그 말을 반복했다. 여가부 장관을 공석으로 두고 여성 정책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양이 대표는 “국가 성평등 정책을 총괄하는 기구 자체를 없애려고 했다는 점에서 최근 정부 중 최악”이라며 “심지어 이를 정치적으로 선동하고 이용한 것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양이 대표는 “윤 정부 이후 한국 사회의 상식선이 무너지는 일이 자주 있었다”며 “결국 소수자인 여성, 약자인 장애인, 이주민 등이 낭떠러지로 먼저 몰리게 된다”고 했다.

상식선을 회복하고 무너진 국가 시스템을 회복하는 것. 양이 대표는 이것이 탄핵 이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그는 “무너지는 속도는 빠르지만 회복하기엔 시간이 배가 들 수 있다”면서도 “계엄을 막아낸 것도, 탄핵을 이뤄낸 것도 시민들이기 때문에 느린 속도라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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