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이동준(53)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선고 다음 날인 5일, 광화문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12월 계엄령 선포 뒤 넉 달간 토요일 외출을 삼갔던 그는 이날 오랜만에 집을 나섰다. 구름같이 모인 집회 인파와 교통 체증도 문제지만, 광장에서 두 쪽으로 갈라져 싸우는 이들을 지켜보는 일이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역대 대통령마다 취임할 땐 국민 통합을 그렇게 강조하더니 국민을 이렇게까지 쪼개지게 한 건 큰 문제”라고 했다.
청와대와 인접한 효자동에 살아 역사 속 사건을 생생히 목도할 수 있었다. 그가 초등학생 시절이던 1979년 10·26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과 이듬해 5·18 계엄 확대 당시 광장을 장악한 군인들의 모습도 기억했다.
이씨는 “10·26 때는 당시 동네 어른들로부터 총소리가 났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80년 5·18 민주화운동이 벌어진 뒤엔 “청와대 입구 쪽에 군인들이 이중 삼중으로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실탄을 소지했던 것도 봤다”고 말했다. 중학생이던 87년엔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도 벌어졌다. 그는 “우리나라는 수십 년에 걸쳐 어른들이 목숨까지 걸고 지켜온 민주주의 국가”라고 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를 지켜봐 왔던 이씨지만 이번처럼 분열이 극심했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광우병 땐 유모차를 끌고 나온 모습을 봐도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땐 대부분 탄핵을 외쳐 4주 정도면 평화로워졌다”며 “하지만 이번엔 두 진영이 완전히 갈라진 데다 국회의원과 대통령까지 나서서 분열을 부추기니 더 극단적 양상을 띠었다”고 했다.

게다가 분열이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도 제작 회사에서 일하는 이씨는 매일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이번 주가 마지막 주말 집회가 될 것이라는 기사가 희망 고문이었다”며 “선고만 나면 혼란이 끝날 줄 알았는데 분열의 새로운 시작이 될까 봐 두렵다”고 했다.
파면 선고 이튿날의 광장에서 탄핵 찬성 지지자들은 축제를 벌였지만 반대한 측은 “불복”을 외치며 집회를 이어갔다. 경복궁에서 약 200~300m 떨어진 이씨 집 근처 골목 안쪽까지 집회 소음이 윙윙 울렸다. 그는 “토요일엔 아침 8시부터 밤까지 12시간 넘게 소리가 울리는 탓에 창문도 열 수 없다”며 “고도 제한 등 규제로 재산권 침해가 심한 동네임에도 조용하고 깨끗하다는 게 장점이었는데 이젠 계속 살아야 하나 고민된다”고 했다.
평소 효자동은 평일엔 조용하고 주말엔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나들이를 나오는 평화로운 곳이라고 한다. 효자동에서 태어나 청운초‧청운중‧경복고를 졸업한 이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홀로 터를 지켜올 만큼 동네에 애착을 가졌다. 그는 “이제는 이쪽저쪽으로 나뉘어 싸우지 말고 화합해 어렵게 지킨 민주주의를 함께 발전시킬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넉 달간 힘든 시간을 보낸 경복궁‧안국 인근 상인들도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며 일상 회복에 힘을 쏟고 있다. 경복궁역 인근의 한 카페 사장 A씨는 “지난 1월 집회 소음 때문에 아르바이트생이 공황 증세를 보이며 그만뒀다”며 “유동 인구는 많아도 집회 참여자가 대부분이라 매출 타격이 컸는데 선고가 났으니 조금은 나아질 거라 기대한다”고 했다.
헌법재판소 옆, 경찰 통제선 안쪽에서 요거트 가게를 운영하는 염모(27)씨도 “성수기 때 장사가 잘됐던 것으로 겨우 적자를 메우던 중 선고 일자가 나오자 누구보다 반가웠다”며 “한동안 혼란이 이어지겠지만 서서히 회복될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