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대표하는 하이 주얼러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이 고전 문학 '보물섬'에서 영감 받아 완성한 새 하이 주얼리 컬렉션 '트레저 아일랜드'를 내놨다.

하이 주얼리는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다
하이 주얼리는 귀한 원석을 풍부하게 사용하고 장인의 손으로 하나하나 만든다는 점에서 주얼리 분야의 최고로 여겨진다. 어느 것 하나 같은 제품이 없어 소장 가치도 높다. 더욱 매력적인 건 제품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다. 원석의 희소성부터 독보적 디자인, 장인 정신에 대한 헌사까지 주제에 제한이 없다. 모험, 사랑, 자연의 아름다움 등 사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를 직관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서사와 감동 담은 주얼리 본보기
1906년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 한 세기를 넘긴 반클리프 아펠은 ‘서사’를 담은 하이 주얼리 분야 선봉장이다. 특히 2000년대 초부터 특정 주제를 바탕으로 완성하는 테마틱(thematic)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창의성과 우수한 주얼리 제작 노하우를 보여준다. 수십 점, 많게는 백여 점 이상의 세트로 구성된 이 컬렉션은 동·식물을 포함해 자연∙도시∙패션∙바다∙무용 등 여러 이야기를 다룬다.

문학 작품은 무엇보다 중요한 소재다. 그간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 쥘 베른의 ‘경이의 여행’, 샤를 페로의 ‘당나귀 가죽’ 등이 하이 주얼리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지금 소개하는 ‘트레저 아일랜드’ 컬렉션도 문학작품을 토대로 한 테마틱 하이 주얼리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집필한 소설 ‘보물섬(Treasure Island·1883년)’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난관을 극복하며 섬에 숨겨진 보물을 찾기까지의 여정, 그리고 그 과정 중에 마주친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주얼리로 표현했다.

브랜드가 속한 리치몬트 그룹의 최고경영자 니콜라 보스(전 반클리프 아펠 회장)는 “소설 보물섬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동과 강렬한 상상의 요소가 가득한 작품”이라며 “장인 정신과 브랜드 특유의 감성을 담아 이야기의 감동을 하이 주얼리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컬렉션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트레저 아일랜드는 지난해 11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처음 공개됐다. 그리고 추가 작품을 지난 2월 태국 푸껫에서 공개했다. 두 곳 모두 보물섬 컨셉에 맞춰 이국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해안 지역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총책임자(president)인 줄리 클로디 메디나는 “신비로운 매력을 가진 컬렉션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며 “해변의 절경과 더불어 수백 년간 자란 뱅갈 나무와 야자수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 이국적 풍경을 보여주는 푸껫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장소 선정 이유를 밝혔다. 브랜드는 2019년 루비를 중심으로 한 하이 주얼리 컬렉션 ‘트레저 오브 루비’를 태국 방콕에서 공개한 바 있다.
여정∙풍경∙보물이 만든 이야기
트레저 아일랜드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크게 3개 챕터로 나뉜다. 첫 번째 장은 ‘바다에서 펼쳐지는 모험’으로, 항해의 여정과 해양 세계를 다룬다. 소설 속 주인공이 바다 위에서 경험한 것을 주얼리로 만들었다.
두 번째 장은 ‘섬의 탐험’이다. 섬 도착 후 접한 여러 동식물을 그려냈다. 다이아몬드로 표현한 야자수 잎은 왕관 모양의 네크리스로 바뀌고, 원석으로 만든 조개껍데기 묶음은 브레이슬릿이 된다. ‘팔므레 메르베유스 네크리스’에 세팅된 카보숑 컷 에메랄드는 47.93캐럿에 달한다. 위엄이 느껴지는 작품 중 하나다.

‘트레저 헌터’라 이름 붙인 마지막 장에서는 미지의 섬에 숨겨진 보물들을 표현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실제 여러 시기에 걸쳐 다양한 대륙에서 발견된 주얼리를 재해석해 작품으로 만들었다.

절대 타협하지 않는 원석의 품질
유년 시절의 환상과 모험을 담은 소설이 컬렉션 창작의 배경이 된 만큼 귀엽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그 모습과 달리 제작 기법은 매우 까다롭다. 특히 스톤을 고정하는 프롱(혹은 마운트)이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 세팅'은 이번 컬렉션에도 핵심 노하우로 등장했다. 반클리프 아펠은 1933년 이 기법의 특허를 냈다. 이와 함께 골드 비즈, 해머링, 꼬임 장식, 조각(인그레이빙) 등 장인의 ‘손맛’을 활용한 기법이 총동원됐다.

원석을 모으는 것에도 힘을 쏟았다. 바다, 햇빛, 자연 속 동·식물을 재해석하기에 적합한 스톤을 찾기 위해 4년의 세월을 보냈다. 컬러(color)∙선명도(clarity)∙커팅(cutting)∙캐럿(carat) 등 좋은 원석을 가리는 기준이 되는 4C에 캐릭터(character), 즉 스톤 고유의 개성까지 고려했다.

색이 다른 버프 톱 사파이어를 가지고 음영(그러데이션) 효과를 낸 ‘프와송 미스터리유 클립’은 최상의 원석을 가리고 이를 조화롭게 배치하는 브랜드의 실력을 드러내는 대표작이다. 발표 직후 트레저 아일랜드 컬렉션에 속한 제품 대다수가 고객에게 판매됐다. 이에 브랜드는 계속해서 이번 컬렉션을 추가 선보일 계획이라 밝혔다.

동심의 세계 표현한 스토리텔러
태국 푸껫 현지에서 아·태 지역 총책임자 줄리 클로디 메디나를 만났다. 그는 20여 년의 럭셔리 분야 경력 중 절반 이상을 반클리프 아펠에서 쌓았다. 지난 10년간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근무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험도 풍부하다.

인터뷰에서 그는 다채로움과 유머, 즐거움 등 동심의 세계를 되살리는 것이 이번 트레저 아일랜드 컬렉션의 진짜 매력이라 했다. 태국 방문 일주일 전 메디나는 서울을 찾았다. “한국 고객은 우리의 브랜드 철학을 잘 이해하며 하이 주얼리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말하며 한국 시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와의 일문일답.
Q 컬렉션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행복하고 장난기 가득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창의적인 스토리텔러로서 반클리프 아펠이 해야 할 일이었다. 우리의 창의력과 타협하지 않는 고도의 장인정신을 알리는 것도 중요했다. 이제 보물섬은 자연의 아름다움, 모험과 탐험 등 매혹적인 여정을 담은 문학 작품이자 하이 주얼리 작품이 됐다.”

Q 어떤 종류의 원석을 집중적으로 사용했나.
“한 가지를 정할 수 없다. 루비∙사파이어∙에메랄드∙다이아몬드로 대표되는 프레셔스 스톤과 함께 터쿼이즈, 투어말린, 스페사르타이트 가닛 등 유색 스톤을 고루 사용했다. 섬과 바다를 넘나드는 소설 속 배경, 그곳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동식물과 보물을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서다. 우리 스톤 부서 직원들은 ‘보물찾기(treasure hunt)’하듯 4년에 걸쳐 컬렉션을 위한 스톤을 확보했다. 4C와 또 하나의 C인 ‘캐릭터’를 충족하는 것을 찾아야 했다. 스톤 고유의 개성뿐 아니라 사람들이 스톤을 바라볼 때 생기는 감정까지 캐릭터에 포함된다.”


Q 이번 컬렉션에 특별히 사용한 제작 기법이 있나.
“1933년에 특허받은 미스터리 세팅은 계속해 진화 중이다. 이번 컬렉션엔 이 기법을 활용한 작품 8점이 추가됐다. 그중 ‘프와송 미스터리유 클립’과 ‘필로 미스터리유 클립’ 2점은 비트라이(Vitrail) 미스터리 세팅을 적용했다. 원석을 붙잡는 프롱이 제품 어느 면에서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빛 통과 시 원석 색이 더욱 도드라진다.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편, 강렬한 색을 띠는 5.33 캐럿의 태국산 루비를 가운데 세팅하고, 다이아몬드와 골드로 바닷속 산호를 표현한 ‘레시프 코랄리앙 네크리스’도 눈여겨볼 작품이다. 로코코 양식을 반영한 기하학적 구조가 돋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