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 통제에 나쁜 선례 만든 12·3 계엄의 교훈

2025-01-06

미국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 영웅인 조지 워싱턴 장군이 지휘하던 대륙군은 세계 최강 대영제국 군을 상대로 1775년 시작한 독립전쟁을 8년만인 1783년 승리했다. 대륙회의(미국 의회의 전신)는 이듬해 6월 군대 해산을 명령했다. 한때 5만명에 이르던 대륙군이 700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군대 해산 이유는 평화 시에 상비군이 국민의 자유를 위협하며 폭정을 위한 파괴적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북미대륙 13개 식민주(州)들의 입장에서 보면 평생 독재 권력을 휘둘렀던 영국 올리버 크롬웰의 철기군을 떠올리게 하는 상비군은 공포와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의 군대 규모는 300만명에 육박했다.

미국은 문민통제 전통 확고해

직업군대는 정치적 도구 아냐

이젠 민간인 국방장관 나오길

전쟁이 끝나고 평시가 됐으므로 미국의 전통에 따르면 마땅히 군대를 대폭 줄였어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냉전 시대 소련의 사활적 군사 위협에 노출되면서 미국은 고민에 빠진다. 1957년 새뮤엘 헌팅턴은 『군인과 국가(The Soldier and the State)』에서 이런 딜레마에 해답을 제시했다. 그것은 객관적 문민통제였다.

객관적 문민통제의 목표는 ‘군대의 군대화’다. 군대는 어떤 적과 싸워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 직업군대의 존재가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동시에 군대의 철저한 정치적 중립을 요구한다. 군대가 정치적 영역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유일한 해법이 객관적 문민통제다.

객관적 문민통제의 반대는 주관적 문민통제다. 양자는 국토방위와 국민 생명·재산의 보호를 위해 창설된 군대가 정권을 뒤엎을 수 있다는 위협을 공유한다. 그래서 모두 군대 권력의 극소화를 추구한다. 주관적 문민통제의 목표는 ‘군대의 민간화’다. 즉, 시민군처럼 군인·민간인이 구분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전문 직업군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군인의 정치 참여와 정치인의 군대 개입을 당연시한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사례는 민·군 관계의 붕괴가 국가 패망을 초래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독일제국(1871~1918) 시대엔 높은 수준의 객관적 문민통제가 정착됐다. 몰트케·슐리펜 등 클라우제비츠의 제자들이 장교단의 기준을 제공했다. 군부 지도자들은 정치적 야망이 없었다. 그러나 1914년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역대급 대승을 거두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힌덴부르크·루덴도르프 등 전쟁 영웅이 국민의 우상으로 부상하자 신격화된 군부 집단이 정치집단으로 변신했다.

이어 1차 대전 발발 무렵 독일은 민·군 관계의 균형이 깨졌다. 군대가 국민의 일상생활까지 간섭하는 지경이었다. 2차 대전 때는 민·군 관계가 완전히 망가졌다. 나치 정권은 독일군 참모부 조직을 해체하고, 군대를 2개 사령부로 쪼개 히틀러가 유일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전쟁 막바지에 연대급 부대의 이동조차 히틀러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독일 민·군 관계의 역사적 교훈은 분명하다. 1차 대전 때는 전문 직업군대가 ‘자발적 정치집단’으로 변질해 국가 패망을 초래했다. 2차 대전 때는 전문 직업군대가 ‘타율적 정치집단’으로 전락해 다시금 국가 패망을 자초했다. 이처럼 민·군 관계의 성패는 국가 존망을 좌우할 수 있다.

한국에서 민·군 관계를 돌아보면 좌파든 우파든 집권 시 주관적 문민통제에 골몰한 것이 눈에 띈다. 좌파 정권은 주적(主敵) 개념의 삭제, 굴욕적 수준의 ‘9·19 군사합의’ 등으로 군대의 민간화를 추진했다. 급기야 계엄령 문건을 이유로 기무사령부(현 방첩사)를 해체했다. 우파 정권은 명분도 불확실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 만에 거둬들였다. 군통수권자가 전문 직업군대를 정치적 도구로 동원한 12·3 계엄은 주관적 문민통제의 나쁜 사례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 군대는 대통령이 멋대로 써먹을 수 있는 정치적 도구가 아니라 국민의 군대다. 이번 계엄 사태를 교훈 삼아 이제 우리도 예비역 군인 출신이 아니라 민간인 출신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대다수 선진국이 문민 국방장관을 두는 것은 건강한 민·군 관계를 위한 필수 최소요건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특임교수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