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한 고층 거주 환경, 재난 시 ‘대참사’
‘안전 규정 상습 위반’ 등 문제점 지적도
존 리 장관 “대나무 비계, 금속 대체 논의”
시민들은 ‘홍콩 건설 문화 정체성’ 인식

지난 26일 홍콩 북부 타이포구의 32층 공공분양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宏福苑)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참사를 계기로 홍콩의 구조적 문제와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신뢰 문제 등이 제기되고 있다.
28일 홍콩 성도일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홍콩 당국은 이번 화재로 이날 오후 기준 사망자 128명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실종자 20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가 완전히 진압되면서 오후부터 구조 작업이 본격화됐고, 부상자 가운데 위중·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추가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화재는 1948년 176명이 숨진 홍콩 창고 폭발 이후 77년 만에 최악의 인명 피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가디언은 27일(현지시간) “홍콩 시민들 사이에서 화재 원인을 둘러싼 분노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참사로 홍콩 사회에 깊게 자리 잡은 주거 불안과 천정부지의 주택 가격 문제가 다시 부각됐다는 것이다. 극도로 높은 집값 탓에 많은 시민이 고층 아파트에 빽빽하게 거주하고 있어, 이런 구조가 재난 시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위험성을 노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대나무 비계를 금속 비계로 대체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당수 홍콩 시민은 정부가 화재의 요인을 대나무 비계로만 돌리는 데 불만을 표하고 있다. 실제 화재 현장에서는 대나무 비계가 일부 무너지긴 했지만 불에 타지 않고 형체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길에 소실된 것은 비계 사이에 설치된 녹색 안전그물이었다. 일각에서는 대나무 비계를 홍콩 건설 문화의 중요한 유산이자 정체성으로 보며, 중국 본토에서 주로 쓰이는 금속 비계와 구별되는 상징성도 갖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타이포 출신의 전 홍콩 구의원인 마이클 모는 웡 푹 코트 주민들이 수개월 전부터 시공사의 부실 공사와 위험성을 지속해서 제기해왔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홍콩 노동국 명의의 e메일이 주민들에게 공유됐는데, 메일에는 “보수공사에는 불꽃 작업이 없어 비계에서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낮다”고 했다. 또 노동국 규정에는 비계 재료의 난연 기준을 관리하지 않는다고 안내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수공사 현장에서 화재 위험성을 경고하는 민원이 반복됐음에도 참사가 발생한 것은 전형적인 ‘인재’라는 비판이 나온다. 해당 업체가 안전 규정을 상습적으로 위반했다는 보도도 현지 언론을 통해 연이어 나오고 있다.
28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경찰과 홍콩 반부패 수사기구인 염정공서(ICAC)는 웡 푹 코트 보수공사 과정에서의 부패 의혹에 대한 형사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현재까지 업체 관계자 5명이 체포됐다.
그간 홍콩은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독립 판사가 주도하는 공개 조사위원회를 설치해왔지만, 이번 사건에서 같은 절차가 진행될 가능성은 작다. 최근 중국 중앙정부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홍콩의 사법 독립성이 크게 약화한 점이 근거로 꼽힌다. 마이클 모는 “홍콩 정부는 코로나19 때도 독립 조사를 하지 않았다”며 “이번 사건에 독립위원회를 꾸린다면 존 리 행정장관은 정치적으로 끝장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화재 진압과 피해 최소화를 위해 ‘전면적 노력’을 지시했다. BYD, 지리,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기업들은 수천만 홍콩달러 규모의 구호 기부를 약속했다.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인민해방군이 언제든 도시를 지킬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존 리 행정장관은 12월 7일로 예정된 입법회(국회 격) 선거 연기 가능성도 언급했다. 홍콩 정부는 2020년에도 코로나19를 이유로 선거를 연기했는데 당시 민주 진영에 큰 타격을 준 조치였다는 점에서 홍콩 시민들의 정치적 불안과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 위성에서 내려다 본 홍콩 화재 참사 이전과 이후](https://img.newspim.com/news/2025/11/28/251128091814747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