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대나무’ 바람 타고 옆 건물로…30분 안에 7개동 활활

2025-11-27

‘5년간 사망 22건’ 안전 논란에도

금속보다 싼 대나무 비계 선호

안전그물도 난염성 아닌 불량품

홍콩식 밀집형 건물도 참사 키워

300명 넘는 사망·실종자를 낸 홍콩 ‘웡 푹 코트’ 아파트단지 화재는 보수공사를 위해 건물 외벽에 설치한 대나무 비계와 가연성 소재의 그물망이 참사를 키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단전매 등 홍콩언론과 AFP·로이터통신 등을 종합하면 화재는 지난 26일 오후 2시52분 처음 신고됐다. 불길은 공사 중이던 건물 외벽의 대나무 비계에서 치솟아 순식간에 위층으로 번졌고,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단지 내 8개동 가운데 7개동으로 확산됐다.

홍콩 소방당국은 이날 브리핑에서 “초기 추정으로는 불이 붙은 잡동사니와 대나무 비계가 바람에 날려 인근 건물로 날아갔고 이로 인해 화염이 7개 동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홍콩01도 불씨가 붙은 대나무 파편이 바람에 흩날렸다는 목격자 증언을 전했다.

건설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건물 외벽에 설치하는 비계는 통상 금속으로 제작되지만 홍콩에서는 비용 문제로 대나무가 널리 사용돼왔다. 2019∼2024년 대나무 비계 관련 작업자 사망 사고가 22건 발생하는 등 안전 문제가 잇따르자 홍콩노동자권익협회는 철제 비계 전환을 요구했다. 홍콩 당국도 단계적 전환을 추진해왔지만 대나무 비계 제작업계의 반발이 전환 속도를 늦췄다.

단전매는 대나무 비계 사이에 설치돼 건물 외벽을 거의 덮고 있던 녹색 안전그물 역시 화재를 키운 주요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홍콩 건축조례에 따르면 그물은 불이 쉽게 붙지 않는 ‘난염성’ 소재로 제작돼야 하지만 실제 사용된 그물은 기준에 미달한 불량품이었다는 것이다.

단전매와 인터뷰한 30년 경력의 건설 엔지니어 루오는 “난염성 제품을 사용하라는 지침만 있을 뿐 실제 검사 절차나 사용 방식에 대한 규정은 없다”며 “현장에서 쓰이는 그물의 99%가 불량품”이라고 말했다.

비계와 안전그물을 타고 건물을 휘감은 불길은 각 층 엘리베이터 홀에 설치돼 있던 스티로폼 자재와 가구 등을 태우며 건물 내부 깊숙이 번졌다. 유독가스가 발생하면서 소방당국도 복도 안으로 쉽게 진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데릭 암스트롱 찬 홍콩 소방청 부국장은 브리핑에서 “건물 내부의 고열이 소방 활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며 “피해 건물의 잔해와 비계 일부가 무너져 내려 최전선 인력에게 추가적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담뱃불과 같은 ‘불씨’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올해로 준공 42년이 된 ‘웡 푹 코트’는 지난해 7월부터 보수 공사 중이었는데 공사 작업자의 흡연 문제를 지적하는 주민 민원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고 한다.

아파트가 홍콩 특유의 ‘밀집형’ 건축물이라는 점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 단지에는 총 1984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48∼54㎡(약 14.5∼16.3평) 규모의 소형 가구로 구성돼 있다. 거주자 중 약 40%를 차지하는 노인층이나 고층 거주자들이 제때 대피하지 못해 참변을 당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력으로 탈출한 일부 주민들은 화재 당시 경보기가 울리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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