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사에 상관없이 꺼내고 싶어요. 뜨거운 건물에 두고 싶지 않아요.”
23층 주민 정씨는 아내와 연락이 끊겼다며 울부짖었다. 27일 오후 도착한 홍콩 신계(New Territory) 타이포구의 공공 아파트단지 웡 푹 코트(宏福苑) 화재 현장. 32층 건물 앞에 고가 사다리 소방차가 잔불이 남은 창문으로 연신 물을 뿜어댔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32층짜리 8개 동으로 구성된 웡 푹 코트를 휘감은 이번 불은 전날(26일) 오후 2시 52분께부터 피어올랐다. 1개 동을 제외한 7개 동에 불길이 옮겨붙어 27일까지 최소 55명이 숨지고 68명이 부상했으며 279명이 실종됐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홍콩01 등 현지 매체가 보도했다. 희생자 가운데 화재 진압 중 순직한 소방관 1명이 포함됐다. 웡푹 코트에는 사고 시점까지 1984세대 주민 4600여명이 거주했다.
실종자를 등록하는 접수대에는 사람들이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타이포구의 페이스북 커뮤니티에는 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사연이 올라왔다. “아직 우리 딸을 찾지 못했어요. 벌써 24시간이 지나는 데 젖을 먹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 있어요.”(딸, 시어머니와 연락이 끊긴 주민) 수백 명이 넘는 주민들은 구조 작업을 응원했다. 인근 톈수이에서 왔다는 짜우 씨(57)는 “직장에 휴가를 내고 자원봉사를 왔다”고 했다. 인근 성공회 초등학교는 이재민 숙소로 변해 있었다. 운동장에는 각지에서 보내온 구호용품이 쌓여 있었다.

준공 43년차 노후 단지인 웡 푹 코트는 지난해 7월부터 보수 공사 중이었다. 대나무 비계(飛階·작업자 이동용 간이 구조물)와 가연성 자재를 타고 불길이 빠르게 번진 게 참사 원인으로 지목됐다. 비계는 통상 금속 제품을 쓰지만, 홍콩에서는 싸다는 이유로 대나무를 쓰고 있다. 화재의 정확한 원인은 불명이지만, 재난이 증폭된 과정은 적어도 인재(人災)란 얘기다. 주민들은 최초 발화지점을 두고 “대나무 비계”, “건물 쓰레기장”으로 엇갈렸다.
덩빙창(鄧炳强) 홍콩 보안국장은 이날 “건물 외벽의 보호망, 일부 방수포와 스티로폼 덮개가 규정과 다른 인화성 자재임을 발견했다”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덩 국장은 “이번 사고를 화재뿐 아니라 형사 사건으로 보고 합동조사팀을 구성했다”고 강조했다. 홍콩 경찰은 웡푹 코트의 보수를 맡은 업체 관계자 3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은 비계용 보호망에 부적합 자재를 사용하고 창문을 스티로폼으로 봉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화재는 지난 19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 이후 최악의 화재다. 1918년 2월 홍콩 섬 해피밸리 경마장에서 발생한 대화재로 600여명이 숨지고 400여명이 부상했다. 최근에는 2008년 8월 구룡반도 몽콕의 골든하베스트 빌딩에서 발생한 5급 화재로 4명이 숨지고 55명이 부상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현재까지 파악된 우리 국민 피해는 없다”고 했다.
리자차오(李家超) 홍콩 행정장관은 이날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총력을 기울여 가능한 모든 조치를 하겠다”며 홍콩 전역의 리모델링 현장에 대한 즉각적인 안전 점검을 지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인명 구조 및 사상자 현황 파악 등을 지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