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일하는 날을 줄이자는 공약을 앞다퉈 검토 중이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계적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주 4.5일제를 띄우자, 국민의힘은 근로시간 단축 없는 주 4.5일제로 맞불을 놓았다.
같은 주 4.5일제지만 내용은 ‘동상이몽’이다. 국민의 힘이 주장하는 주 4.5일제는 총 근로시간을 그대로 둔 채 몰아 일하고 빨리 퇴근하는 제도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8시간 기본 근무 외에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에는 4시간만 근무한 뒤 퇴근하는 방식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아닌 유연화에 방점을 뒀다. 반면 민주당의 주 4.5일제는 근로시간 단축이 핵심이다. 현 근로시간 40시간을 36시간(주 4.5일제)를 거쳐 32시간(주 4일제)까지 단계적으로 줄여나가자는 제안이다.

양당이 주장하는 주 4.5일제를 두고 정부와 전문가 모두 우려한다. 가장 큰 문제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다. 고용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주 4~4.5일제는 지난 대선 때도 나온 이야기로 내부적으로 검토했을 때 임금 삭감 없이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방안의 경우 기업의 부담, 특히 중소기업의 어려움 등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수혜를 받을 수 있겠지만,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며 “중소기업의 경우 인위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이면 근로시간은 유지된 채 추가 연장근로수당 부담만 안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주 4.5일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도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과 정보기술(IT)기업, 일부 지방 관공서 등이 중심이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주 4.5일제는 근로시간 단축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근로시간을 법으로 획일화하려는 정책 자체가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김문수 대선 경선 후보는 15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방문해 손경식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주 4.5일제로)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게 옳은가”라며 “기업에 자율성을 줘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날 회동 이후 손 회장은 중앙일보에 “(주 4.5일제 공약에 대해) 기업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 제언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경총 회장단은 “주 4일제나 4.5일제를 시행했을 때 모든 업종, 모든 기업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법률은 지금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소수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주 4.5일제를 실시하기 어려운 환경이란 주장이다.
김기선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떤 방식의 4.5일제든 법으로 정하려 한다는 게 문제”라며 “근로시간은 노사가 선택할 여지를 주고, 회사의 사정에 맞게 정해야 한다. 중소기업에서는 지금 주 40시간 맞추기도 어렵고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인데 법으로 밀어붙이면 부작용이 크다”고 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도 “금요일 쉬고 일하는 시간을 왜 나라가 정하냐”며 “양당 모두 선거철을 앞두고 주 4.5일이란 캐치프레이즈보다 근로자의 재량권·자율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한국의 장시간 근로 문제는 근로시간 단축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성재민 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근로시간 통계 국제비교로 본 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장시간 근로는 파트타임 근로자가 적은 게 큰 원인”이라며 “유연근로제 등이 활용되지 못해 연장근로가 많은 것도 장시간 근로의 이유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쉼(휴식) 관행’이 부족한 점도 장시간 근로의 이유로 꼽았다. 성 연구위원은 “휴가 사용 방식이 제한적이다 보니 있는 연차휴가도 다 쓰지 못한다. 근로시간이 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법정 근로시간을 주 40시간 미만으로 정한 국가는 호주(38시간), 벨기에(38시간), 프랑스(35시간) 등 많지 않다.독일의 경우 법정 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 연장 근로시간은 최대 2시간이다. 이를 일주일로 환산하면 주 5일 기준 50시간, 주 6일 기준 60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물론 6개월간 주 평균 근로시간을 48시간 이내로 맞춰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이를 고려해도 한국 법정 근로시간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독일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349시간으로 조사국 가운데 가장 짧고, 한국(1872시간)보다 500시간 가까이 짧다. 조준모 교수는 “독일은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운영하는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쉬는’ 대표적인 나라라 근로시간이 적은 것”이라며 “독일의 경우 일을 많이 하고 난 뒤 수개월씩 쉬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주 5일제 도입 당시를 복기해 보면 주 4.5일제도 험로가 예상된다. 주 5일제는 2000년 당시 한나라당이 공약으로 발표한 이후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 건 2011년으로, 10년이 넘게 걸렸다. 당시 고용보험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1000억원) 등 정부 예산 지원도 동반됐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도 주 4일제 실험이 활발한 만큼 사회적 논의를 정부가 시작하자는 제안도 있다. 실제로 경기도는 주 4.5일제 시범사업에 참여할 기업을 모집 중이다. 도내 기업 50여 곳을 선정해 근로자 1인당 26만원(주당 5시간 단축 시)을 지원한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노동시간 단축은 전 세계적인 흐름인 만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나 정부 차원에서 이번 기회에 여러 모델로 시범 사업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