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이 당 사무처 직원들에게 주 최소 55시간을 의무적으로 근무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비상 근무를 하라는 취지다. 주 55시간 근무는 법정 근로시간을 넘어선다. 국민의힘이 대선 공약으로 내놓은 ‘주 4.5일 근무제’ 도입과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국민의힘 총무인사부 문건 등을 보면, 지난 7일 총무인사부는 당 사무처 직원들 대상으로 의무 근로 시간을 공지했다. 이날부터 공식 후보등록일인 다음 달 10~11일까지 ‘1일 근무시간(평일 12시간, 주말 6시간)을 준수’와 ‘휴게시간을 포함해 출근 후 (평일) 12시간 뒤 / (주말 및 공휴일) 6시간 뒤 퇴근’을 지시했다. 평일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하고, 주말 및 공휴일엔 오전 9시~오후 3시 혹은 오후 2시~8시 두 시간대 중 양일 한 번 이상 출근하는 것을 기준근로시간으로 제시했다.
공문에 따르면 점심 시간과 점심·저녁 시간 각 1시간씩을 제외하더라도 매주 최소 55시간을 근무하게 된다. 근로기준법에선 한 주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노사 간 합의가 있을 때 12시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특정 주의 노동시간을 연장하고 다른 주는 단축시켜 단위 기간의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 노동시간에 맞추는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활용된 것도 아니다. 대선과 정당이란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명시적으로 법정 근로시간을 넘겨서 일하도록 공지한 것은 잘못이란 지적이 나온다. 유은수 노무사는 이날 통화에서 “아무리 비상시라고 하더라도 일괄적으로 모든 근로자에게 상시 주 55시간을 근무하라고 하는 것은 위법한 지시”라고 말했다.
주말 근무를 필수적으로 정해둔 것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 인사규칙엔 ‘퇴근 후 또는 휴일이라 하더라도 비상사태가 일어난 때에는 즉시 출근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하은성 노무사는 “인사규칙에 적힌 ‘비상사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지만, 소정근로일 외에 주말 근무를 강제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상 강제근로금지 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고 했다.
최근 국민의힘이 ‘주 4.5일 근무제’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것과 비교했을 때 이런 공지는 모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4일 비대위 회의에서 “국민의힘은 법정 근로 시간 40시간을 유지하되, 실질적인 4.5일제의 이점을 노리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 대선 공약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정작 내부 직원들은 주 6일 넘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국민들한테는 주 4.5일제를 말하는 게 우습다”며 “근로기준법조차 지키지 않는 조직이 말하는 근로자의 권리를 누가 믿어주느냐”고 말했다.
경향신문 취재가 시작된 직후인 이날 오전 국민의힘 총무국은 당 사무처 당직자들에게 ‘탄핵 판결에 따른 유사시 대비 비상근무체제(1차)는 현 시간부로 종료된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21대 대선 대비 사무처당직자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공지했다. 이날부터 비상근무 체제를 종료한다는 의미다. 총무국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당시 비상상황 발생으로 인해 진행됐던 것”이라며 “지난 주말 이후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정상근무로 전환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취재가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