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의 세상 이야기] 검투사도 외나무다리에서는 싸우지 않는다

2025-01-06

[시대일보​]흰 염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데 반대편에서 검은 염소가 건너오고 있었다. 다리 중간에서 마주친 두 염소는 서로 물러가라고 싸웠다.

그러나 그야말로 좁은 외나무다리여서 돌아설 수도 없었다. 다리 아래는 깊은 물이 흐르고 있어 조금이라도 발을 잘못 떼면 떨어져 죽는 형국이었다. 그런데도 두 염소는 외나무다리에서 밀치고 싸우다 결국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참 어리석은 염소들이었다.

<또 다른 염소 이야기>

흰 염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데 중간에서 검은 염소와 마주치게 되었다. 역시 누구도 뒤돌아설 수 없는 좁은 다리. 그래서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흰 염소가 검은 염소에게 제안을 했다.

“이러다가는 우리 둘 다 죽는다. 그러니 우리 둘 다 사는 방법을 찾자. 내가 엎드릴 테니 네가 내 등을 밟고 건너가라. 그러면 너도 다리를 건널 수 있지만, 나도 내 길을 갈 수 있지 않느냐.”

그래서 두 염소는 사이좋게 외나무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협상을 통해 상생의 길을 택한 것이다.

요즘 우리 정치 상황이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 두 염소가 죽자 살자 싸우는 모습 같다. 문제는 이 싸움에 나라가 절단나고 있다는 것이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가 문턱에 놓여있고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역시 탄핵 되어 부총리가 대행의 대행이라는 세계에 전례가 없는 직함이 등장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 불안한 정치 상황 때문에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환율이 1,450원을 뛰어넘을 위험 수위이고 중소기업체들이 울상이며 식당의 손님들까지 끊겨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깊다.

북한 도발의 위협 속에 안보를 책임질 국방장관은 공석이고 국군 통수권은 누구인지 모호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곧 출발할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접촉도 전무한 실정이다.

이런 판에 무안 공항에서 제주항공의 대형참사로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염소들은 외나무다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싸우는 데 정신이 없다.

국회에서 부끄러운 싸움의 현장을 뒤로 하고 걸어 나오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미소는 무슨 뜻일까? 무서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 두 마리 염소가 살아난 협상의 지혜를 우리 정치는 배울 수 없을까?

최상목 대행이 국회에서 넘어온 3명의 헌법재판관 중, 여·야가 추천한 1명씩을 임명키로 한 것이나, 김건희 특검법을 포함한 이른바 쌍특검법에 대해서도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 염소’의 지혜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해 여·야가 비판을 가하고 특히 여당은 최 대행에 대해 ‘배신자’라고까지 몰아붙이고 있지만, 헌법재판소가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것을 무작정 외면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야당은 야당 추천 2명 가운데 1명만 임명한 것에 ‘위헌’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역시 헌법재판소의 정상화를 위한 최선의 선택임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도 특검을 야당만 추천하게 한 조항이 위헌 시비가 있는 만큼 국회에서 여·야가 협상을 통해 수정한 후 다시 의결을 거친다면 싸우지 않고 외나무다리를 건널 수 있을 것이다.

이 불안한 정국을 조속히 안정시켜야 하는 이 절실한 현실 앞에 ‘외나무다리의 염소’의 지혜를 발휘하길 갈망한다.

‘로마의 검투사’들도 외나무다리에서는 싸우지 않는다. 둘 다 죽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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