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양수의 Xin chào 5] 베트남 국화는 연꽃인가?

2025-12-16

베트남을 소개하는 국제 홍보물이나 관광 안내서 또는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영상과 광고에서 연꽃은 거의 빠지지 않는 상징물이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베트남의 국화는 연꽃이다”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통념은 사실과 다르다. 베트남 정부는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특정 꽃을 ‘국화(國花)’로 법적-제도적으로 지정한 적이 없다. 즉, 연꽃은 ‘정부가 공표한 국화’가 아니라, 국민적 인식 속에서 형성된 문화적-정서적 국화이다. 오히려 베트남은 국화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진행한 적은 있으나, 최종 지정은 이루어지지 않은 유례가 있는 국가다.

그렇다면 왜 베트남 사람들은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연꽃을 “우리나라의 꽃”으로 여길 만큼 강한 애정을 보일까? 여기에는 역사-종교-문학-예술-생활 문화-국가 이미지 전략이 서로 맞물려 만들어낸 총체적 요인이 작동한다. 연꽃은 법적 국화가 아니지만, 베트남 사회의 상징 체계 안에서 이미 국화에 준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 법률적 차원의 ‘부재’가 연꽃의 상징성을 약화하지 않은 이유

우선, 베트남 정부는 법률이나 결정문 등 어느 공식 문서에서도 특정 꽃을 국화로 지정한 적이 없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국화 선정’을 위한 대국민 여론 수렴 절차가 있었고 응답자의 82%가 찬성했지만, 법적 효력이 있는 결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공식 지정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이미 연꽃을 “베트남을 대표하는 꽃”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화가 반드시 ‘법적 선언’을 통해서만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오랜 시간 축적된 문화적 관습과 사회적 합의가 비공식 국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연꽃이 차지한 상징적 위상이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즉, 연꽃은 ‘법적 국화는 아니지만 실질적 국화’이며, 베트남인의 감정과 일상, 문화적 기억 속에서 이미 국가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다.

■ 유교적 가치관 속에서 연꽃이 상징하는 ‘순결함과 도덕성’

연꽃은 진흙에서 자라면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식물이라는 점에서 순수성·고결함-청렴성을 상징한다. 이 상징은 베트남 고전 문학과 유교적 교육 체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강화됐다.

베트남은 유교의 영향을 깊이 받은 사회로, 인간의 품성과 도덕적 절개를 강조하는 문화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맥락에서 연꽃은 ‘군자의 덕’을 상징하는 꽃, ‘세속에 물들지 않는 정직함’을 보여주는 비유로 자주 등장한다. 전통 시문과 베트남 문헌에서도 연꽃은 “난세 속에서도 본성을 잃지 않는 인물”을 형용하는 데에 널리 사용되었다.

특히 베트남의 민요와 구전 문학에서는, 연꽃이 “흙탕물 속에서도 향기를 잃지 않는 존재”로 등장하며, 이는 베트남 민족이 역사 속에서 경험한 침략·전쟁·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집단적 서사와도 연결된다.

■ 불교적 세계관과 연꽃의 성스러운 이미지

베트남에서 연꽃이 강한 상징성을 가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불교 전통이다.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대승불교의 영향 아래 존재해 왔고, 사찰 구조와 불교 미술에서 연꽃은 핵심적인 도상으로 기능한다.

부처가 앉아 있는 자리인 연화좌(蓮華座), 사찰 문양과 기둥에 새겨진 연꽃 문양, 제례 도구의 연꽃 형상화, 연꽃을 활용한 불교 의례 등, 이 모든 요소가 연꽃을 “깨달음과 자비의 상징”으로 규정한다.

즉, 연꽃은 세속의 오염을 초월한 존재이자 궁극적 진리의 구현체라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종교적 상징은 자연스럽게 문화와 예술, 일상의 심미적 감각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결과, 연꽃은 단순히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영적 순수성의 메타포, ‘베트남인의 도덕성과 영성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자리 잡았다.

■ 문학·예술 속 연꽃의 반복적 재현: 민족 정체성의 상징

베트남 민요(ca dao), 전통 가요(hò, ví giặm), 옛 시문 등에서는 연꽃이 자주 등장하며, 사랑·충절·절개·고난 같은 주요 감정이 모두 연꽃의 이미지와 결부된다.

예를 들어, 연꽃이 “진흙탕에서도 고귀함을 유지하는 존재”로 묘사되는 구절은 농민의 성실함, 여성의 절개, 민족의 인내를 은유하는 데 활용되었다. 이는 베트남 사회가 농업 중심 사회였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강과 늪, 논이 생활의 중심이었던 환경에서 연꽃은 베트남인의 자연환경과 정서적 풍경이 결합한 상징적 이미지로 발전했다.

예술에서도 연꽃은 회화·조각·건축의 핵심 소재로 등장한다. 특히 후에(Huế)의 궁정 문화에서는 연꽃을 전통 문양으로 빈번하게 활용했으며, 현대 베트남의 공예, 베트남 자수(thêu), 도자기 디자인에서도 연꽃은 흔한 소재 중 하나다.

이처럼 문학과 예술 속의 반복적 재현은 연꽃을 ‘베트남적인 것’의 대표적 상징으로 굳히는 역할을 했다.

■ 생활 문화 속의 연꽃: 음식-건강-감각 경험 속의 친밀함

연꽃은 베트남의 일상 문화 속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대표적인 예로 다음과 같은 음식과 생활 문화가 있다.

연잎밥(cơm lá sen), 연꽃차(trà sen), 연근 요리 및 약재, 하노이 호떠이(西湖)의 전통 연꽃차 제조 등과 같은 식음료가 있다. 하노이 호떠이 연꽃은 향이 깊어 연꽃차의 최고급 재료로 유명하며, 이는 국내외 관광객의 관심을 끄는 대표적 전통문화다. 연꽃이 시각적·기호적 상징을 넘어, 후각·미각·촉각 등 감각의 차원에서 체험되는 ‘생활 속의 꽃’이라는 점은 국가적 상징으로 자리 잡는 데 강력한 심리적 기반을 제공한다.

즉, 연꽃은 베트남인의 삶을 꾸미는 미적 대상일 뿐 아니라, 직접 먹고 마시고 몸을 다스리는 생활 문화의 일부다. 이는 연꽃에 대한 정서적 친근감과 애정을 자연스럽게 심화시키는 요소이다.

■ 현대 국가 이미지 전략 속에서 강화된 ‘연꽃 = 베트남’ 구도

연꽃이 베트남의 국가적 이미지로 굳어지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현대의 상징 전략과 브랜드화 과정이다. 베트남의 대표 항공사인 Vietnam Airlines는 연꽃을 모티프로 한 로고를 사용하며, 이는 국제 사회에서 “연꽃 = 베트남”이라는 연상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각종 국가 행사, 정부 홍보 포스터, 관광 캠페인, 국제 박람회 부스 등에서 연꽃 문양이 지속적으로 활용된다. 이는 법적 지정과 관계없이 연꽃이 ‘사실상의 국화’로 자리 잡는 과정을 가속했다.

특히 2011년의 국화 선정 논의 과정에서 국민 다수가 연꽃을 지지했던 기록은, 비록 법적 지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사회적 합의가 이미 연꽃을 국화처럼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 ‘법적 국화는 아니다’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

연꽃이 사실상의 국화처럼 여겨진다는 대중적 인식과는 달리, 베트남 정부는 공식 국화를 지정하지 않았다. 이 점을 분명하게 강조하는 것은 문화적 상징과 법적 제도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연꽃은 제도적 정체성을 갖춘 국화가 아닌, 문화적·정서적 국화이다. 이는 국가 상징이 반드시 정부에 의해 ‘위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생활 문화·감정·예술·종교적 경험으로 ‘아래로부터’ 형성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 결론적으로 “베트남 국화는 연꽃인가?”

법적 의미와 문화적 의미의 분리할 수 있다. 요약하면, 베트남은 국화를 법적으로 지정한 적이 없다. 그러나 연꽃은 베트남인의 정서·종교·문학·예술·생활 문화·국가 브랜드 전략 속에서 이미 ‘국화처럼 기능하는 꽃’이다.

연꽃이 베트남 문화에서 대표성을 갖게 된 이유는, 순수성과 절개를 상징하는 유교적 맥락과 깨달음과 진리를 상징하는 불교적 이미지, 전통 문학과 민요 속의 반복적 재현, 음식과 생활 문화 속에서의 친숙함, 현대 국가 이미지 전략 속의 시각적 강도, 국민적 합의를 반영한 사회적 선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따라서 “베트남 국화는 연꽃이다”라는 표현은 사실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연꽃은 베트남 정부가 지정한 국화는 아니지만, 국민적 상징으로서 국화에 준하는 위상을 갖는 꽃이다.”

즉, 연꽃은 법적 국화는 아니지만, 베트남 문화가 스스로 선택한 상징적·정서적 국화라 할 수 있다. 연꽃은 진흙을 딛고 피어나면서도 본연의 고결함을 잃지 않는 존재이다. 이는 베트남 민족이 걸어온 역사, 어려움 속에서도 정체성과 존엄을 지켜온 삶의 방식과 겹쳐 보인다. 따라서 연꽃은 베트남인의 마음속에서 단순한 관상식물이 아니라, 민족적 자부심과 정신적 가치가 응축된 꽃으로 자리 잡아 왔다. 결국 연꽃은 “지정된 적 없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국화”, 즉 베트남의 비공식 국화로 남아 있다.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배양수 yangsoobae@gmail.com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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