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파고와 대결 영광이기도 하고
바둑의 종지부를 찍은 느낌
4국 78수 ‘묘수’라고들 하지만
그냥 작전을 잘 짜서 이긴 것
바둑의 본질, AI가 완전히 바꿔
같이 복기도 대화도 할 수 없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깔린 뒤
프로기사들도 수 외우는 데 열중
은퇴 자체 후회한 적은 없지만
쉬운 ‘삼삼’ 하나 못 둘 만큼
고정관념에 갇혀 있던 내 바둑이
무엇을 전했을까 늘 자문해봐
바둑의 ‘진입장벽’ 낮추고 싶어
보드게임 만들고 학생들 가르쳐
프로 복귀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사회에 보탬 되는 일 하고 싶어
‘한국 바둑의 전설’ 이세돌 9단. 그가 반상을 떠난 지 5년이 넘었다.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프로기사가 된 천재 소년. 바둑인생 24년4개월 동안 숱한 드라마를 쓴 주인공이다. 그는 14차례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 바둑계를 호령했다. 1324승 3무 577패. 그중에는 열일곱 살에 쓴 32연승 기록도 포함돼 있다.
2016년 3월13일 그가 인류를 대표해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AlphaGo)와 벌인 ‘세기의 대국’은 바둑의 역사가 달라지는 기폭제가 됐다. 1승4패. 그 1승은 ‘인류가 AI에 거둔 사실상의 마지막 승리’로 남았다. 이후 중국의 커제 9단 등 내로라하는 프로기사 어느 누구도 AI를 상대로 1승조차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프로기사 대다수가 AI로 바둑공부를 하고 있다.
알파고에 패한 충격은 2019년 12월 이 9단의 은퇴로 이어졌다.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그는 지난해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AI에 진 것은 어떤 의미에선 나의 세계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국기원과의 오랜 불화도 은퇴를 앞당겼다.
은퇴 후 그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강연 등에서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드게임 홍보대사가 됐다거나 보드게임을 개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쎈돌’ 이세돌이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은 역시 ‘반상’ 위다. 이 9단과 지난 5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울산과기원 특임교수로 강단에
- 은퇴 후 어떻게 지냈습니까.
“변화는 많았지만, 특별한 건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계공학과와 AI대학원 특임교수로 임용이 됐더군요.
“울산과학기술원에서 강연을 한 번 한 적이 있는데, 그게 인연이 됐어요. 이번 학기부터 격주 금요일마다 KTX를 타고 내려가서 6시간씩 강단에 섭니다.”
- 수업 내용은 뭔가요.
“3시간은 바둑을 가르치고, 3시간은 보드게임 만드는 작업을 해요.”
- 2023년 직접 연구해 보드게임 ‘위즈스톤 시리즈’(그레이트 킹덤, 킹스 크라운, 나인 나이츠)도 개발했더라고요.
“바둑이 좀 더 대중화됐으면 좋겠는데, 진입장벽이 높잖아요. 그래서 좀 쉽게 풀어보면 어떨까 생각해서 바둑을 모티브로 한 그레이트 킹덤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또 다른 게임도 만들게 됐고요.”
- 판매가 많이 됐습니까.
“제 나름대로 쉽게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소비자들은 좀 어려워하시더라고요(웃음). 저는 게임의 룰을 만들었을 뿐이고, 판매는 코리아보드게임즈가 하는데, 쉽지 않아요.”
- 평소 바둑은 좀 둡니까.
“둘 일이 별로 없죠.”
- 이 9단의 현역 복귀를 원하는 팬들이 여전히 많아요.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도 은퇴 후 복귀했잖아요.
“(잠시 침묵하다가) 불가능하죠. 공백기가 있고, 나이도 있으니….”
- 이창호 9단(1975년생)은 물론이고, 조훈현 9단(1953년생)처럼 나이가 많은 기사들도 프로기사로 여전히 활약 중이에요. 시니어 국내·세계 대회도 있고요.
“글쎄요. 이벤트성 대회라면 가능하지만, 프로 복귀는 현실적으로 힘들고 불가능한 이야기예요.”
- 이벤트성 대회라면 어떤 대회를 말하나요.
“은퇴 후 프로기사들과 바둑을 둬본 적이 없는데, 작년에 최정 9단, 김은지 9단과 대국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굉장히 기대했죠. 남성 중심이던 바둑계에 최정 같은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국내 여성 기사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남녀 맞대국을 벌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확신까지는 아니어서 승부를 장담할 수는 없죠. 그런데 논의가 흐지부지된 것으로 알아요.”
그는 현역 시절, 한국기원과 오랜 불화를 겪었다. 급기야 2016년 5월 프로기사회가 권한을 남용하고 적립금을 부당하게 뗀다며 기사회 탈퇴를 단행했다. 이에 맞서 한국기원은 2019년 7월 “본원 주최 기전엔 기사회 소속 기사만 참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새 정관을 통과시켰다. 이 9단은 대국 자체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9단에 대해 완강하던 한국기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해 7월부터 김인한 총재대행 체제가 들어서면서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지난 10일 전화통화에서 “이세돌 9단은 한국 바둑계의 귀한 자산”이라며 “이 9단과 함께하는 행사를 적극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바둑이 더욱 활성화되면 좋겠다”고도 했다. 다만 정관 때문에 은퇴 후 현역 복귀는 불가능하다.

- 은퇴 시기가 좀 빨랐어요. 후회나 아쉬움은 없습니까.
“은퇴 자체를 후회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돌이켜 봤을 때 아쉬운 점은 있죠. 바둑계 안에서의 일들이 기억에 많이 남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어요. 은퇴 후 잠깐 ‘복기’를 해본 정도였어요. 그런데 바둑의 수법 중 하나인 삼삼(三三)을 못 둔 게 가장 아쉽더라고요. 바둑 AI가 보편화된 요즘에는 프로바둑에서도 삼삼을 파내는 패턴이 흔해졌고 숫제 대국 초반에 삼삼을 막 파잖아요. 하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바둑을 그렇게 두는 것은 좋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못했어요. 고정관념이란 게 그렇게 무서워요.”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많은 프로기사들이 명국(名局)을 만들고 싶어해요. 명국은 혼자 잘 두어선 안 되고 상대방도 잘 두어야 하는데, 한 수 한 수 책임을 지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그런데 그건 어떻게 보면 꿈이에요. 정말로 누구도 ‘명국을 뒀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해요. 저도 은퇴할 때까지 못 만들었고요. AI 등장으로 지금은 좀 다르지만, 프로기사는 바둑의 길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그렇게 쉬운 삼삼 하나 못 둘 만큼 고정관념 속에 갇혀 있던 나의 바둑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주긴 했을까, 하고 자문하는 거죠.”
- 바둑을 흔히 ‘고독한 경쟁’ ‘외로운 싸움’이라고 하죠.
“혼자서 해내야 하는 게 프로기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예요. 바둑이란 게 굉장히 어린 나이에 프로가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프로기사들에게 심리상담을 추천하신 분들도 계셨어요. 하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것을 워낙 좋아했어요.”
AI 등장으로 ‘새로운 바둑’ 시작된 것
2016년 알파고와 벌인 5번기는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다. 비록 1승4패로 고배를 마셨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불가능할 것 같은 1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 알파고와 대결한 지 벌써 9년이 지났어요. 그날의 대국은 이 9단에게 어떤 의미로 새겨져 있습니까.
“영광이기도 하고, 제 바둑의 종지부를 찍은 듯한 느낌도 있어요. 저는 시작과 끝이 명확해요. 바둑을 예술로 배웠고 그런 자부심을 갖고 바둑을 하다가 알파고에 이르렀어요. 그리고 알파고의 등장을 기점으로 바둑의 본질이 완전히 바뀌었죠. 새로운 바둑이 시작된 거예요.”
- 갈채를 받았어도 개인적으로는 충격이 컸을 것 같아요.
“대국 직전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압승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1국에서 너무 당황했습니다. 바둑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번갈아 돌을 하나씩 놓는 것인데, 알파고의 지시에 따라 대신 돌을 놓아주는 분은 계셨지만 승부호흡이 없으니 당혹스러웠어요. 집중이 안 됐죠. 그러다 2국 때 깨달았어요. 알파고를 이기기 쉽지 않다는 것을요. 제가 정상적으로 최선을 다해 두었는데 안 됐으니까요. 거기서 충격을 받았죠.”
-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뭔가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안 되는 그림이라고 판단해 3국에서는 작전을 짰어요. 그러나 대국 초반에 승부를 보려 한 작전이 패인(敗因)이었어요. 수가 많아질수록 인공지능이 계산을 잘할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 작전을 짠 건데, 망했죠. 알파고는 무한 복습과 알파고끼리 100만 번 이상의 대국을 거쳐 엄청난 데이터를 갖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미 계산이 어느 정도 되는 상황이었어요. 반면 경험을 통해 감각을 익히는 인간은 돌이 놓여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한두 수 둔 것으로는 계산할 수 없죠. 그래서 4국 때 작전을 바꿨습니다. 그게 통했고요.”
- 어떤 작전이었길래요.
“버그를 일으키자고 작정했죠. 그리고 초반에 승부를 보면 안 되니 50수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 하고, 그렇다고 돌이 너무 많아지면 알파고가 완전해질 수 있으니 70~80수에서 승패를 가리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가장 힘든 결정을 내린 것은 68수쯤이었어요. 제 바둑 형태가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래도 인간끼리 둔다면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아주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어요. 사람과 대국할 때는 이후 진행을 그렇게 하지 않죠. 하지만 인공지능을 정수로는 이길 수 없음을 알기에, 무조건 버그를 일으키려고 78수를 그쪽에 둔 겁니다.”

- 사람들은 4국에서 보여준 78수를 ‘신의 한 수’ ‘묘수’라 합니다.
“그냥 작전을 잘 짠 것이고 그 작전대로 해서 이긴 거예요. 당시 알파고가 초기 버전이라 가능했던 것이고요. 이후 인간과의 대국에선 결코 하지 않을 그러한 수를 과연 바둑이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5국에선 또 알파고에게 졌어요. 4국의 작전이 5국에선 통하지 않은 건가요.
“제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알파고가 5국 초반에 실수, 일종의 버그가 일어났어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알파고를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다시 한번 정상적으로 바둑을 둬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그러한 욕심에 제가 실수를 하고 말았죠. 그래서 졌어요.”
- 5국에서 백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왜 흑을 잡았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4국처럼 이 9단이 다시 백을 잡고 78수까지 똑같이 두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중국 프로기사 거의 모두와 우리 기사 상당수도 뒤에 두는(後手) 백이 좋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요. 2승2패 상황이면 저도 돌 가리기(대국 시작 전에 누가 흑, 백을 잡을지 정하는 방법)를 했을 거예요. 그런데 1승3패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내가 또 백으로 이긴다손 쳐도 유리한 상황에서 시작한 것이니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백으로 이겼으니 먼저 두는(先手) 흑으로도 이기고 싶었죠. 물론 제가 백으로 4국 때와 똑같이 둔다 해도 알파고는 다르게 뒀을 겁니다.”

바둑, 이기는 것만이 전부는 아냐
- 바둑을 예술로 배웠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바둑은 경우의 수가 무한해요. 정답이 없어요. 그래서 고뇌에 찬 연구를 통해 자신만의 것을 투영하고 그것이 맞물리면서 하나의 작품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그럴까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깔리기 시작한 2017년 이전만 해도 바둑을 공부하는 것은 아마추어 때까지였어요. 프로가 된 후에는 바둑을 연구한다고 했죠. 그런데 지금은 프로기사들도 공부라는 표현을 써요. 기사들이 연구 대신 AI와 대국하고 암기하죠. 50수까지 인공지능의 수를 외우고, 그다음에는 인공지능의 감각을 익혀요.”
- 더 이상 예술이 아닌 바둑은 과거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는 걸까요.
“누구는 제 말이 신진서 9단을 비롯한 지금의 바둑 1인자들이나 바둑의 가치를 낮추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단지 바둑이 달라진 것뿐입니다.”
- 어쨌든 이기는 게 중요하겠죠.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바둑을 두다 보면 이 정도만 해도 이겼구나, 하는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하지만 수읽기를 해서 손해를 본다는 것을 알아도, 심지어 자칫 역전을 당할 수 있음에도 양보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최선의 수를 두기 위해서예요. 프로기사는 바둑의 길을 제시하는 사람이니까요. 대국이 끝난 후 복기도 정말 중요해요. 대국을 한 쌍방이 왜 그렇게 두었는지를 서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영감을 얻는 과정이죠. 하지만 AI와는 복기를 할 수 없고, 서로 대화할 수도 없어요.”
- 바둑 AI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계속 바둑계 현역으로 있었을까요.
“마흔 살까지는 하지 않았겠나 싶어요. 그런데 제가 알파고와 대국을 하고 1년 후쯤에 중국의 커제 9단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3연패했어요. 이제는 도저히 인간이 인공지능을 상대로 바둑을 두어 이길 수 없다고 더 확신하게 됐죠.”
- 이 9단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다고 생각하나요.
“바둑인생을 살면서 즐거웠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이 늘 있었기 때문에 어느 특정시기를 말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앞으로 살면서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프로기사 시절의 목표가 “명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던 그는 지금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을까. 돌아온 답은 “구체적으로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였다. 끽연가인 그는 인터뷰가 끝나고 카페 밖으로 나오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였다.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속에서 어떤 생각에 골몰한 듯한 그의 표정이 아른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