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월8일 두 노동자가 불타버린 공장 옥상에 올랐다.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서 LCD 편광 필름을 생산하던 박정혜씨와 소현숙씨다. 두 사람은 모회사 일본 니토덴코그룹이 공장을 폐업하고 고용승계를 거부하자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발단은 2022년 10월에 난 큰불이었다. 공장이 타버리자 니토덴코는 생산물량을 자회사인 경기 평택의 한국니토옵티칼로 옮긴 후 노동자들을 내쫓았다.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199명이 해고됐고, 이를 거부한 7명의 노동자들만 남아 긴 싸움이 시작됐다.
옥상 농성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화장실이 없어 배변 패드를 이용해야 하는 텐트 안에서 물과 음식을 도르래로 받았다. 급기야 지난달 27일 소씨가 건강 악화로 농성을 중단하고 땅으로 내려왔다.
해고 노동자들 요구는 그저 평택공장에서 일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이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평택공장에 156명의 노동자를 새로 채용했다. 그러곤 공장철거 방해 가처분을 신청하고 간접강제금 집행까지 신청했다. 외국인투자기업의 전형적인 ‘먹튀 경영’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노동계와 시민들이 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1일 160㎞ 걸어 농성장을 찾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걷잡을 수 없이 막막하고 외로운 날에는, 당신들을 만나기 위해 30만보를 걸어왔던 그 발걸음들을 기억해달라”고 외쳤다. 그로부터 ‘희망 뚜벅이’ 캠페인이 펼쳐졌다. 연대는 또 다른 연대로 이어진다. 고공농성 500일째를 맞은 21일 구미 공장에는 전국에서 시민들이 보내온 ‘인형 동지’들이 박씨 곁을 지켰다. 약자들의 투쟁 현장에 달려가는 ‘말벌 동지’ 시민들은 점심으로 카레를 만들어 옥상으로 올려 보냈다. 고공농성 농성자들과 연대하는 ‘굴뚝신문’이 이날 10년 만에 재발행됐다. 혼자 남은 박씨가 이날만큼은 마음이 든든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500일이 되도록 땅을 밟지 못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을 터다. 한국 여성노동자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을 세운 김진숙씨의 309일도 갈아치웠다. 너무나 슬픈 기록이다. 내 발로 내려가서 “때 밀고 빵 먹고 싶다”던 박씨는 오늘도 내려오지 못했다. 그의 바람이 이루어질 날이 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