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언어, 과학의 언어

2025-01-15

혼란스러운 정국의 파도가 지나가던 작년 12월 초, 작가 한강(삽화)의 언어가 스웨덴의 차가운 대기를 잔잔히 채웠다. 조용하고 차분한 어조로 낭독된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과 특별 강연엔 삶의 고통과 사랑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담겼다. 그런데 내게 그 언어는 과학의 숨결로도 다가왔다.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우리가 이 세계에 잠시 머무는 의미는 무엇인지.” 작가가 품었던 질문들은 과학자가 평생을 두고 끊임없이 반추하는 물음과 이어진다.

물론 문학의 언어와 과학의 언어는 극명히 다르다. 문학이 삶의 보편적 고통과 절망, 희망과 사랑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껴안으며 나아간다면 과학은 자연 현상에 대해 엄밀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거나 반증하며 객관성의 벽돌을 하나씩 쌓아 올려 단단한 이론 체계를 구축한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는 면에서 문학과 과학은 단단한 공통분모를 갖는 것이 아닐까.

작가가 장편 소설 집필 중 느꼈던 매혹을 이야기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그는 삶의 상당 기간을 바쳐 소설을 완성하는 과정을 중요한 질문 속에 머무는 것이라 표현했다. 위대한 과학적 성취가 이뤄지는 과정도 비슷하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후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력과 시공간의 문제에 깊이 천착하고 나서야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했다. 오랜 시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한 끝에 그는 결국 혼자 거동하지 못할 정도로 지치고 말았다.

한강은 자신의 노트에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이란 문구를 남긴 적이 있다. 문학이 역사 속 인간을 정직하게 바라본다면 과학은 우주 속 인간의 위치와 전망을 밝히려 한다. 그간 삶에서 마주한 고통과 아름다움 사이의 긴장 속에서 역사 속 인간을 직시해 온 한강의 문학적 세계관이 더욱 확장되어 우주 속 인간까지 품어 나가기를 평범한 과학자로서 소망해 본다.

고재현 한림대 반도체·디스플레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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