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밀어붙인 이마트의 미국 진출은, 6년이 지난 지금 '절반의 성공, 절반의 숙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유시장 정신을 동경해 2025년 트럼프 대통령 재선 취임식에 직접 참석했던 그였기에, 이번 미국 사업 성적표는 더욱 상징적이다.
이마트의 미국 시장 도전은 2018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세계는 당시 미국 서부지역 프리미엄 식품 시장 강자인 'Good Food Holdings(G.F.H)'를 약 3억 달러에 인수했다. 브리스톨팜스, 메트로폴리탄마켓, 뉴시즌스마켓, 뉴리프마켓 등 지역 유통 명가들이 한데 묶인 그룹이었다. 정용진 회장은 '국산 대형마트 수출'이라는 낡은 전략 대신, 미국 고소득층 소비자를 겨냥한 '현지 고급 유통 브랜드 흡수' 모델을 택했다.
G.F.H는 코로나19 직전까지 미국 서부에서 유기농·프리미엄 식료품 유통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고, 온라인 중심 유통기업과 차별화된 '체험형 오프라인 리테일'이라는 방향성도 미국 소비 트렌드와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인수 직후부터 G.F.H의 기존 브랜드들은 미국 내에서 리뉴얼이나 유통 채널 확대 없이 제자리에 머물렀고, 온라인 배송·디지털 마케팅 역량도 경쟁사에 비해 현저히 뒤처졌다. 이마트가 가진 국내 오프라인 운영 역량은 미국 고소득 소비자층이 기대하는 '스토리텔링·로컬 친화성·PB상품 다양성' 같은 감성 소비 트렌드를 소화해내기엔 한계가 있었다. 초기 3년간 브랜드 리포지셔닝과 재투자가 지연되면서, 유통업계 특유의 '첫인상'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지적이 현지에서 제기됐다.
2024년 G.F.H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1조2577억원으로 전년 대비 성장했지만, 순이익은 -23억 원으로 여전히 적자 상태다. 수익성 지표인 ROI는 공시상 명시되진 않았으나, 이마트 IR자료를 기반으로 약 3.8% 수준으로 추정된다. 당초 목표였던 8%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다. 특히 경쟁사인 홀푸즈(Whole Foods Market)는 아마존 인수 이후 가격 구조를 다층화하고, 물류 자동화와 PB상품 강화를 통해 ROI 10%대를 유지 중이다. 반면 G.F.H는 현지 소비자에게 "비싸고 낡은 브랜드"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는 것이 현지 업계의 지적이다.
금융비용 커버리지 지표도 불안하다. 2024년 G.F.H의 EBITDA/금융비용 커버리지는 1.9배로, 업계 평균 3.0배에 크게 못 미친다. 이 지표는 이자비용 대비 영업현금흐름의 비율을 나타내며, 일반적으로 3배 이상이면 안정적이고, 1~2배 구간은 재무적 리스크가 높다. 이마트 입장에선 미국 시장에서 '빚을 내 투자했지만, 아직 이자도 제대로 못 갚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정용진의 전략을 단순한 실패로 보긴 어렵다. 이마트는 무리한 확장보다 기존 점포 중심의 효율화 전략으로 선회했다. 현재 G.F.H는 미국 서부 5개 주에 걸쳐 총 51개 점포를 운영 중이며, 2025년까지 출점은 잠정 보류하고 기존 매장 운영 효율 개선, 자체 브랜드 확대, 온라인 배송 역량 보완에 집중하고 있다. 정 회장이 단기 수익보다 구조 개선을 우선순위에 둔 판단은 신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트럼프 주니어의 방한은 이런 맥락에서 다시 주목을 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그가 정용진 회장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고, 입국 직후 곧바로 정 회장의 자택에서 만찬을 함께했다. 방한 목적은 보수 청년단체 행사 참석이었지만, 그보다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연결고리를 재계에 드러내려는 메시지에 가까웠다. 이마트의 미국 사업과 맞물려, 정 회장이 대미 관계 강화를 전략 차원에서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정용진 회장이 트럼프 일가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니다. 그는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에 참석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에도 정 회장은 "미국 시장은 신세계그룹 글로벌 전략의 핵심"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와의 가교 역할을 자임했다.
정용진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23년 EBITDA 기준 흑자 전환에는 성공했지만, 연결 기준 순손실 상태이며 수익률도 기대에 못 미친다. 이마트 내부에서는 "당장의 이익보다 브랜드 리빌딩과 운영 안정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보다 냉정한 평가도 존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 내 프리미엄 식품 소비는 둔화 추세에 있고, G.F.H는 공급망·PB경쟁력에서 홀푸즈나 텍사스계 H.E.B 등 현지 강자에 비해 뚜렷한 차별성이 없다"며 "트럼프 정부와의 인맥은 정치적으로 상징적일 수 있지만, 실제 성패는 결국 매장당 수익성과 비용 구조 개선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