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이하 김부장)’와 영화 ‘사람과 고기’를 잇달아 봤다. 하나는 가진 것을 지키며 버티는 50대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다 잃고 나서도 어쨌든 살아가는 노년의 이야기다. 아마도 그사이 어딘가쯤에 있는 듯한 나는 웃으면서도 짠한 마음이었다. 둘 다 직설적인 제목이다. ‘김부장’은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우리가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애쓰는 것들이고, ‘사람과 고기’는 그 모든 것들을 뒤로했을 때 그래도 삶의 최소 행복을 지키는 데 필요한 두 가지를 말한다.
평균치의 애환 다룬 드라마
무전취식 노인들 그린 영화
결국 남는 건 함께했던 사람들

서울. 자가. 대기업. 부장. 김낙수 앞에 붙는 수식어는 한국형 성공의 징표들이다. 문제는 이 징표들이 그를 보호하는 동시에 옭아맨다는 것이다. 가방이 200만원인지 300만원인지, 아파트가 강남인지 강북인지, 승진이 먼저인지 나중인지, 자식들 학교가 어딘지. 이런 것들에 그의 온 정체성은 좌우된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김낙수는 꼰대도 되었다가 쿨한 척도 했다가 우왕좌왕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일관성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의 행복은 늘 자신의 상징 좌표들을 확인하는 데서 유지된다.
“백세시대는 나에겐 재앙이야.” 김부장 드라마 속 허 과장의 절망적인 한탄이다. 25년 동기인 김낙수 부장(류승룡) 앞에서 좌천 위기를 맞은 그가 쏟아낸 말이다. 하지만 김낙수는 잘리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다.
“낙수야, 우리 회사에 20년 넘도록 붙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우리 좋아하는 사람 없다고 봐야 돼.” 냉혹한 현실은 이렇다. 위에서나 아래서나 ‘저 인간 왜 안 그만두나 혹은 왜 안잘리나’ 싫어한다. 아무것도 안전하지 않은 50대의 초상이다. 그러나 김부장은 한 치 앞을 못 본다.
젊을 때는 이런 식이다. 남들과의 작은 차이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 차이가 곧 자신의 가치라고 여긴다. 크게 다치지 않지만 자주 다치는, 미시적 불행의 연쇄다. 김부장이 불행한 건 가난해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비교하기 때문이다.
김부장의 몰락은 예고되어 있다. “어떻게 회사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어쩐지 낯설지 않은 비명이다. 그런데 김낙수는 나태한 인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공식을 충실히 수행한 모범생이었다. 문제는 그 공식이 이미 폐기되었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승진하고, 승진하면 행복하다.’ 그 믿음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저런 꼰대’를 비웃다가도 금세 불편해진다. 김부장은 실패자가 아니라, 시대가 바뀔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평균값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는 이미 모든 게임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있다. 영화 ‘사람과 고기’의 세 노인이다. 돈도 가족도 없고 점점 투명인간 취급받는 폐지 줍는 노인들. 무언가를 생산할 능력도 소비할 여력도 없어진 이들이 선택한 건 무전취식.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먹고 계산하지 않고 도망친다.
황당하다. 하지만 이들의 이럴 수밖에 없는 서늘한 현실이 엄존한다. “외로우면 죽어. 배고프면 더 빨리 죽고.” 죽지 않기 위해 극복해야 할 최소 조건은 외로움과 배고픔이다. 사회의 시스템 바깥으로 완전히 밀려 나간 그들이 다시 시스템과 접점을 가진 건 범죄의 순간이었다. 고기를 먹고 튀는 순간만이 겨우 자신의 심장이 뛰고 있음을 확인하고, 자신을 향해 쫓아 올 사람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리고 함께 먹고 달아날 친구들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평생을 돌아보니, 셋이 고기 먹고 다니던 시간이 가장 행복했어.” 장용이 죽기 전 하는 이 말을 들으며 기어코 눈물이 흘렀다. 그들도 젊었을 땐 세세한 차이를 만들고 그걸 얻기 위해 참 힘들게 인생과 싸웠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살아있을 땐 장용과 박근형은 겨우 몇 살 차이로 형님 아우 순서를 다툰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그에게는 그 아름다웠던 한 끼의 기억이 가장 소중했다.
울퉁불퉁 복잡한 인생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의외로 근사해진다. 친구 박근형은 장용이 죽고 난 뒤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참 가지가지 한다”고 투덜거렸지만, 그를 ‘하늘과 별의 아름다움을 알고 시를 썼던 아름다운 친구’로 기억할 것이다. 고기를 먹고 눈치를 보다가 달아나는 현실은 구차했지만, 친구는 죽은 이가 원했던 대로 “옛날에 암에 걸려 피 토하면서도 고기 먹고 불꽃처럼 살다간 노인이 있었다고 기억”해줄 것이다.
김부장도 나중엔 그런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른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은 미시적 불행에 얽매이지 않고 거시적 위로를 배우는 거라고. 디테일에 목매지 않고 전체를 바라보는 여유. 삶의 중요한 매듭, 행복한 매듭만 기억하는 능력. 마지막에 남는 건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것. 사람, 식탁, 고기 한 끼, 함께 있는 시간. 그 사실을 알아버린 노인들의 고기 굽는 손끝은 그래서 따뜻하고, 눈물겹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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