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미디어] 사랑은 망했고, 성장합니다

2025-11-06

먼저 간단한 질문을 하나 해보겠다. ‘새드엔딩 로맨스’를 네 글자로 줄이면? 정답은 ‘망한 사랑’이다. 그리 어려운 단어의 조합도 아니건만, 처음 망한 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땐 며칠 헛웃음이 났다. 사랑에 실패해 서로에게 지워지지 않는 감정이 되는 비극적 로맨스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망한 사랑’이라는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약간은 경박한 단어로 정의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이 ‘망한 사랑’이 2030세대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5월 개봉한 영화<파과>는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었다. 해당 작품은 개봉 후 CGV 골든에그 지수 92%를 달성하며, 동 시기 개봉작 중 2030세대에게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영화로 알려졌다. 2030세대의 흥행 요인 중 하나는 주인공의 삐뚤어진 사랑과 이에 따라 한쪽이 죽게 되는 ‘비극적’ 결말이다. 사랑을 갈구하다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인물을 관객은 끝없이 회상하며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자 재관람을 선택했다.

사랑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음악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얼마 전 걸그룹 엔믹스(NMIXX)가 데뷔 3년 8개월 만에 신곡 <블루 발렌타인(Blue Valentine)>으로 음원사이트 멜론 톱 100 1위에 올랐다. 이 곡은 완전히 끝난 사랑의 비극이 아닌 사랑의 불안정성에 대한 혼란과 그것을 이겨내려는 성장 의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사랑의 슬픔을 인지하는 과정 자체가 곧 감정적 성장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한 장르에서 기존 로맨스의 구성을 답습하지 않은 ‘불완전한 사랑’의 서사가 2030세대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망한 사랑’일까?

Z세대의 소비 패턴은 ‘FOMO(Fear of Missing Out)’, 즉 ‘나만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에 기반한다고 알려져 있다. Z세대에게 ‘지금’은 단순한 시간의 단위가 아니다. SNS의 타임라인 속에서 누구보다 빨리 반응하고, 오늘의 유행을 당장 소비해야 한다. 지금 느낀 것을 바로 지금 소비해야만 존재감이 유지되는 구조이다.

이런 세태에서 감정, 나아가 사랑 역시 ‘즉시’ 결정되어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 세대에게 빠른 응답과 표현이 감정 지속성에 불씨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대가 ‘망한 사랑’에 공명하는 이유는 그 반대에 있다, 망한 사랑은 단순히 이루어지지 않은 관계의 비극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의 실패’를 받아들이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즉각적인 삶의 패턴 속에서 오랜 여운과 후회가 남음으로써 사랑과 감정이 유일하게 느리게 존재하는 방식이며,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역설, 그것이 Z세대에게는 일종의 감정적 대리만족이 될 수 있다. 이는 OTT 플랫폼, 티빙의 연애 리얼리티 예능 <환승연애>의 흥행에서도 드러난다. ‘끝난 연인’의 재회와 관계를 다루는 이 프로그램은, 시간이 지나도 정리되지 못한 감정의 파동을 보여주며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또 다른 이유는, ‘불안정함’이라는 단어가 너무 익숙한 세대라는 것이다. 불안정한 고용, 주거, 관계, 미래 등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세대에게 과거 로맨스의 전형이었던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제 비현실적 판타지에서 ‘불편한 현실’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특히 대가 없는 순수한 감정은 없다는 것을 어린 세대조차 세상을 통해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점에서 망한 사랑은 오히려 현실적이다. 완벽하지 않은 사랑, 실패한 사랑, 이루지 못한 관계조차 자신의 성장과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현실적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비극을 통해 현실을 비춰보고, 그 속에서 관계 성장의 가능성을 발견할 기회로 삼는 것이다.

작년, FOMO(Fear Of Missing Out, 놓치는 것의 두려움)를 넘어 ‘JOMO(Joy of Missing Out)’. ‘놓치는 것의 즐거움’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등장했다. 더는 사회적으로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사회의 속도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일과 여가의 균형을 찾는 움직임이다.

‘망한 사랑’ 역시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을 인정하며 스스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사랑은 끝났지만, 그 끝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어떤 망한 것에서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길 바란다.

조은진 청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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