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불탄 천년 고찰, 흘러간 과거일 뿐”

2025-07-01

신라 신문왕 1년 의상대사가 창건

3월 경북 산불에 전각 25채 전소

100일 지난 지금도 사실상 폐허

신도·봉사자 손길로 새살 돋는 중

“영원한 건 없다는 ‘무상’ 되새겨

잿더미 된 숲, 자연에게 맡길 것”

변화는 진리, 과거 집착엔 경계

“원래 모습대로 복구할 필요 없어

사찰보다 주민들의 삶 복구 중요”

지난 3월25일 경북 의성군 일대에 번진 산불은 신라 신문왕 1년(68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 고운사마저 집어삼켰다. 삽시간에 퍼진 불길에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 가운루를 비롯해 전각 25채가 전소됐다.

산불 100일이 지난 지금도 고운사 경내는 폐허나 다름없는 상태다. 그러나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신도와 봉사자들의 헌신으로 고운사의 상처에는 새살이 나고 있었다. 까맣게 타버린 사찰 숲 바닥에는 푸른 새싹이 움텄다.

지난달 19일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에서 만난 주지 등운 스님은 천년의 역사를 앗아간 산불을 원망하지 않았다. 자연이 새롭게 만들어낼 숲의 풍경을 기대하고, 마을 주민의 삶이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등운 스님은 이번 산불을 겪으면서 ‘모든 것은 변하며 영원한 것은 없다’는 불가의 가르침 ‘무상(無常)’을 되새겼다.

“부처님 가르침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무상’이거든요. ‘무상하다’에서 ‘상’자는 ‘항상 상’자를 써요. ‘항상 같은 것은 없다’ ‘찰나, 매 순간이 변한다’는 의미의 무상이야말로 불교 최고 진리입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가족조차도 죽음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잖아요. 변한다는 건 그 자체로 진리예요. 이번 산불로 자연도 사찰도 모두 변했지요. 어쩔 수 없어요. 과거를 떠올리고 지난 시간에 집착할 게 아니라 지금, 현재를 생각해야 해요.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고운사는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사찰이다. 고운사 홈페이지에서도 ‘소나무 숲과 솔내음이 가득한 향기로운 사찰’로 소개한다. 그러나 이번 산불로 소나무 숲은 사라졌다.

등운 스님은 앞으로 고운사의 숲이 꼭 소나무 숲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자연이 지금 땅에서 활엽수를 택한다면 활엽수 숲이 되어도 좋고, 소나무를 택한다면 그걸로도 족하다. 어떤 모습이든 자연이 택하는 숲이면 족하다. 까맣게 타버린 숲이 미관상 좋지 않으니 다시 ‘소나무’를 심어 옛 모습을 복원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원치 않는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다.

그는 “소나무 숲이 참 좋았지요. 이런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산불이 와서 이렇게 나무들이 다 죽었어요. 이미 그렇게 돼버렸어요. 그런데 자꾸 예전 소나무 숲이 좋았지, 이렇게 옛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안 돼요. 지금부터 앞으로 숲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중요하지요. 제 생각에는 이렇게 땅과 산이 다 타버린 열악한 환경에서는 자연에 맡기는 게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다만 임도만큼은 놓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산불이 준 교훈이다.

“산에 불이 나면 잔불 정리가 참 어려워요. 매일 아침 산불 현장을 둘러봤는데, 숲이 우거져 있잖아요. 바닥에 낙엽이 10㎝, 20㎝씩 덮여 있으니까 잔불을 끌 수가 없어요, 낙엽층이 두꺼워서. 아무리 소방당국에서 헬기로 물을 뿌려도 낙엽층 아래까지 물이 내려가지 않아 돌아서면 불이 또 올라와요. 결국 사람이 올라가서 꺼야 하는데, 경사지에 사람들이 장비를 갖고 올라가 끄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임도가 있으면 수월하게 잔불을 끌 수 있지요. 임도가 생기면 산사태가 나고 부작용이 있다고 하는데, 세상에 부작용이 없는 일은 없어요. 일부의 부작용을 전체로 해석하고 반대하는 건 맞지 않지요.”

등운 스님은 불타버린 사찰도 현재에 걸맞게 복원하길 원한다고 했다. 옛 모습 그대로일 필요는 없다.

“사찰 내 문화유산은 기본 설계 도면이 있고 실측도 돼 있으니까 복원을 해요. 그대로 복원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기도 하고. 다만 문화유산 말고 다른 전각이나 부수 시설은 지금 생활양식에 맞춰서 세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지금 사찰 건물은 몇백년 전 생활양식에 맞춰서 지은 거예요. 그래서 사용하기가 불편해요. 이번에 불에 타 없어졌는데, 다시 지을 때 굳이 몇백년 전 양식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지 않나요. 그런데 전문가분들이 복원할 때 옛날 방식을 바꾸면 비판이 나올 것 같으니까 말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주장을 합니다. 지금 사찰 양식에 변화를 주면 그 자체로 전환점이 돼서 백년 뒤에는 지금 현대 건축양식이 또 의미 있는 양식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요.”

등운 스님은 무엇보다 지역 주민의 삶을 복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역이 있어야 사찰도 있습니다. 세상은 더불어 사는 거예요. 오래된 사찰이 탔다고 하니까 많은 분이 마음을 모아 도와줍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사찰은 종단이나 신도분들로부터 이렇게 도움을 받잖아요.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정부에서 조금 도와준 것 말고는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는 분들에게 얘기합니다. 될 수 있으면 우리보다는 마을 사람을 먼저 도와주면 좋겠다고. 마을에 임시주택은 어느 정도 된 거 같은데, 여전히 막막하다고 합니다. 지역 주민의 삶부터 보살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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