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고전소설 『서유기(西遊記)』에는 두 개의 가공할 무기가 등장한다. 여의봉(如意棒)과 파초선(芭蕉扇). 중국의 대륙적 기풍 때문인지 설명이 어마어마하다.
우선 여의봉. 철봉의 양쪽 끝 금테에 적힌 무게가 1만3500근, 환산하면 8.1t이다. 귓속에 넣을 정도로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지만 손오공이 얻기 전엔 동해 용왕이 바다를 떠받치는 철기둥으로 쓰고 있었다. 그전엔 치수(治水)를 위해 강과 바다의 깊이를 재는 척도였고, 거인의 신 반고(盤古)가 천지를 창조하며 땅을 다질 때도 썼다고 하니 원래 크기는 상상 불가다. 손오공은 여의봉을 얻은 뒤 지상과 천상, 저승 삼계를 오가며 성을 부수고 앞길을 막는 어떤 요괴든 때려잡는다.
이 대통령 ‘파초선’ 권력 책임 강조
정성호 “검찰개혁 국민 피해 없게”
정교한 설계로 국민에게 이익 돼야
파초선은 파초 모양의 철부채. 한 번 부치면 사람을 8만4000리(약 3만3000㎞) 날려보내고, 태풍과 비를 부르는 무시무시한 무기다. 우마왕의 아내 철선공주(나찰녀)가 갖고 있던 것으로, 손오공이 삼장법사와 서역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던 화염산 불길을 잡는 데 썼다. 무엇이든 부수고 날려버리는 여의봉과 파초선은 ‘권력의 상징’이다. 가뭄과 홍수 피해가 반복하는 그 반대의 현실에서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됐다.
이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국무회의에서 ‘파초선이란 작은 부채를 든 마녀’를 권력자에 비유해 책임을 주문한 건 정곡을 찔렀다. 이 대통령은 “아주 작은 부채로 세상은 엄청난 격변을 겪는데도 본인은 잘 모른다”며 “권력이 그런 것 같다. 여러분이 하는 일, 작은 사인 하나가 누군가는 죽고 살고, 망하고 흥하고, 그런 게 쌓여 나라가 흥하거나 망하는 일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행정부 관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주권자가 위임한 국군통수권을 입법부 장악을 위한 내란 도구로 활용하고도 내란 재판은 물론 특검 수사에서까지 국민을 향한 ‘계몽령’이었다고 강변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예가 가장 가까운 반면교사다.
경계할 건 군통수권만이 아니다.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가 아닌 평상시에도 체포·구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수사와 기소, 재판권을 포함한 형사사법권도 국민 생명·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당사자에겐 구속 여부가 생사여탈권이나 다름없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 1일 이재명 대통령의 수사·기소 분리 공약을 담고 있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일괄 상정해 법안심사소위에 회부하면서 검찰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지금 검찰은 부패·경제 등 2개 범죄 수사권과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갖고 있는데 수사권은 완전히 없애고 기소·공소유지 권한만 남긴다는 게 골자다. 여당인 민주당의 목표치는 1949년 이래 76년간 존속한 검찰청을 아예 없애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 신설까지다. 같은 날 심우정 검찰총장을 필두로 한 고위직 검사들의 줄사표가 검찰 폐지를 앞둔 엑소더스로 비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졸속 개혁의 피해는 언제나 대다수 국민이 본다. 문재인 정부 당시 검찰 수사권 대폭 축소 등 수사권 조정의 결과 일선 경찰에 사건이 몰려 코인·투자 등 사기, 보이스피싱, 마약 등 민생 범죄 수사는 한없이 미뤄지고 있다. 단순히 중수청이란 수사기관만 늘리면 내란죄 수사권 논란 속에 벌어진 검찰, 경찰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1차 내란 중복 수사처럼 관심은 ‘중대 범죄’로 쏠려 서민 사건은 거들떠도 안 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민주당 당권 주자들은 “추석 전 검찰 폐지 뉴스를 들려드리겠다”고 속도전을 외치지만 또다시 졸속 개혁은 안 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국민에게 피해가 없는 방향”이란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려면 형사사법 전체 시스템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정교한 설계로 수사권 남용은 물론 중복 수사, 무책임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한다. 그 결과는 반드시 국민에게 이익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