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시간 근무를 하면 감정 조절과 인지 기능 등을 담당하는 뇌에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대와 연세대 공동 연구진은 주 52시간 이상 일하는 과로 근무자들이 일반 근무자들에 비해 뇌의 특정 부위에서 뚜렷한 구조 변화를 보였다는 내용의 예비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직업 및 환경 의학(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에 14일 게재했다. 예비 연구는 정식 연구 전에 수행되는 소규모 연구를 말한다.
과도한 업무는 심혈관 질환,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이나 정신 건강과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국제노동기구(ILO)는 매년 과로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서 80만명이 넘는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과로가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뇌 구조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가천 지역 직업코호트연구(GROCS) 데이터를 활용해 의료 종사자 110명의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32명은 주 52시간 이상 일하는 과로 그룹, 78명은 표준 근무 시간을 유지하고 있었다.
분석 결과, 장시간 근무한 집단은 뇌의 전두엽 가운데에서도 ‘중간 전두회’라는 부위의 회백질 용량이 약 19% 증가했다. 이 부위는 주의 집중, 작업 기억력, 언어 처리 등 복합적인 인지 기능을 담당한다. 회백질은 신경세포 밀도가 높은 부분이다. 이 외에도 의사결정과 계획을 담당하는 상전두회, 감정 인식과 통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섬엽도 부피가 증가했다.
이번 연구는 단기간의 소규모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예비 연구다. 따라서 뇌 구조의 변화가 과로의 결과인지, 애초에 뇌 구조 차이로 인해 과로를 감내하는지 인과관계를 단정하기엔 이르다. 다만 과로와 뇌 건강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연구진은 “과로한 사람들의 뇌에서 관찰된 부피 증가는 만성적인 직업 스트레스에 뇌가 적응하려는 일종의 ‘신경적응’ 현상일 수 있다”며 “이는 과로한 사람들이 종종 겪는 인지적 또는 감정적 어려움의 생물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과로를 단순한 노동 문제가 아니라 건강 문제로 다뤄야 하며, 장시간 근무를 줄이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저속노화’ 열풍을 이끈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도 최근 과로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정 교수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정희원의 저속노화’에 ‘과로가 내게 남기고 간 것들’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24시간 못 잔 사람의 인지 기능은 소주 1병 먹은 정도"라며 “과로는 사람을 밑바닥부터 서서히 파괴한다”고 지적했다.
이진우 기자 realsto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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