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중반 경제 여건이 호전되면서 육류 소비량이 늘어나고 음주 패턴도 크게 달라졌다. 소주 위주에서 위스키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유행하고 음주량이 크게 치솟았다.
알코올 과부하는 인체 조직 손상과 신경기능 억제를 유도하며 다른 약물과 상호작용을 해 부작용을 빚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알코올을 발암물질로 경고하고, 사회·경제적인 음주문제가 크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위험성을 강조했다. 그러던 차에 어느 지인에게 “그렇다면 왜 음주의 문제점 해결방안을 연구하지 않느냐?”는 뜨끔한 질책을 받았다.
술의 본질인 알코올은 생화학적으로 가장 간단한 물질이기 때문에 작심하고 음주의 문제점을 검토하면서 알코올이나 아세트알데히드의 체내 잔류시간을 확 줄이는 대사활성방안 개발에 주목했다. 알코올 대사의 필수 조효소인 ‘나드(NAD)’의 세포 내 농도를 복원해주는 아스파테이트-말레이트 샤틀을 활성화하기 위해 아스파테이트를 공급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아스파테이트는 장내 흡수율이 극히 낮기 때문에 전구물질인 아스파라긴을 활용했다. 그 결과 유의한 알코올 독성 제어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더욱 아스파라긴은 아세트알데히드를 직접 제거하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해 ‘유레카’를 외쳤다. 이런 아스파라긴이 콩나물에 다량 함유돼 있음을 밝히면서 전통적으로 숙취 해소를 위해 먹어온 콩나물 해장국의 신비를 풀 수 있었다.
이어 실험실에서 알코올이 간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로 했다. 간암의 결정요인이 술이라는 속설이 만연한 시기였다. 간암 동물모델로는 ‘솔트-파버’법을 택했다. 쥐에게 1차 ‘덴(DEN)’이라는 발암물을 처리하고 2주 뒤 간 부분 절제술을 한 다음 ‘아프(AAF)’라는 두번째 발암물질을 투여하면 7~8개월 지나서 80% 이상에서 간암이 발생한다.
이 실험 모델에서 간암 발생에 알코올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그런데 저농도 알코올 투여군의 간암 발생률이 대조군에 비해 현저하게 낮게 나왔다. 예상과 다르게 알코올이 간암 발생을 억제한 결과를 보여 그 이유를 규명하고자 했다. 과량의 알코올은 간독성이 분명히 나타났으나 소량의 알코올을 장기간 투여하면 간조직 내 글루타티온 산화환원계가 활성화해 생체를 보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속적인 작은 자극에 의한 생체 보호효과인 응내성(應耐性·hormesis)이 알코올에 의해 가동됐음을 밝혔다. 음주가 심혈관계 질환 사망률 저하에 기여한다는 프렌치 패러독스라는 현상도 이 무렵 보고됐다. 음주량이 많은 서구인의 간암 발생률이 그다지 높지 않은 현상도 이해할 수 있었다.
더욱이 통계자료에서 음주와 사망률이 전형적인 제이(J) 자 패턴을 보여 과음군의 사망률은 높으나 금주군에 비해 절주군의 사망률이 유의하게 낮게 나타남이 밝혀졌다. 실제로 장수지역 주민들은 상당수 하루 한번 정도 가족이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어울려 지내고 있다. 기록상 최장수인인 장 칼망은 122세 넘게 살면서도 매일 와인을 즐겼다고 한다.
이런 자료들은 “모든 것은 독이며, 독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용량만이 독의 여부를 정한다”고 갈파한 독성학의 원조인 파라셀수스가 보낸 경고를 되새기게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과 중용(中庸)이라는 양적 조절의 중요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삶의 지혜임이 분명하다. 음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박상철 전남대 연구석좌교수·전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