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무원 시험은 청년 세대가 마지막으로 믿는 공정의 무대다. 누구나 성적순으로 평가받는다는 단순한 원칙이 있었기에 몇 년을 준비한 끝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특정 성별 쏠림을 막기 위해 일반 공무원 시험에 적용해온 ‘양성평등 채용 목표제’를 내년부터 경찰 순경 공채로 확대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 우대” “남성 홀대” 불만 터져
성별 불일치, 예외적 조정은 필요
단기 해법보다 근본 구조 개선을

“남성 우대, 여성 홀대”를 주장하거나 “여성 우대, 남성 홀대”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여하튼 “노력해도 성별 때문에 불리할 수 있다”는 불만이 깔렸다. 청년 취업률과 창업률은 낮아지는 와중에 대기업 공채마저 축소 또는 심지어 증발하는 등 취업 시장의 한파는 심해지고 있다. 정부의 청년 일자리 정책조차 실종됐다는 우려가 나오는 와중에 성비 균형 이슈가 커졌다.
지난 몇 년간 채용 비리가 잇따르고 정치권 개입 논란이 가세하며 불신이 더 증가했다. 고위층 자녀 특혜, 공공기관 채용 비리, 정권 인맥이 얽힌 사례들이 나올 때마다 청년들은 좌절했다. 그 결과 청년들에게 공정은 더 이상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절박한 가치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성비 맞추기 채용은 또 다른 불공정의 불씨로 비칠 수 있다.
그렇다고 성별 불일치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경찰·소방·교정 공무원과 군은 물론이고 일부 현장 직군처럼 특정 성별의 부족 현상이 조직 기능과 국민 서비스에 차질을 빚는 경우엔 예외적 조정은 물론 필요할 수 있다. 나름대로 타당성도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단순히 정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절차적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강해야 한다. 어느 직군에서, 어떤 이유로, 어느 범위까지 허용할 것인지 기준을 명확히 공개하고 선발 과정은 기존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 경우 고려할 수 있는 방식이 구분 채용이다. 반드시 모든 영역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성별 불균형이 실제로 문제를 일으키는 분야에 한정해 별도의 전형을 마련해 운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교사의 경우 성비 불균형이 아동 발달과 교육 효과에 영향을 준다는 논란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런 영역에서는 제한적 성비 조정이 합리적일 수 있다. 다만 이 또한 절차와 기준을 투명하게 제시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해야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결국 가장 바람직한 것은 성비를 구분하지 않고 채용하는 것이다. 능력에 따라 누구나 공직에 들어올 수 있는 구조가 원칙이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성비 조정이 필요하다면 그 범위와 대상은 최소화하고, 절차는 투명하게 설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국민과도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소통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정원 외 선발을 발표하면 청년들은 곧장 불신하고 반발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성비 불균형 문제를 단기간에 채용 숫자를 늘려서 해결하려는 접근 방식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직무 환경과 조직 문화, 승진 체계 같은 구조적 요인을 개선해야 특정 성별의 기피 현상을 줄일 수 있다. 여성에게 과중한 육아·돌봄 부담이 공직사회 진입과 경력 지속에 장애가 된다면 제도적 지원으로 풀어야 한다. 남성에게 지나치게 편중된 현장·야간 근무 구조가 문제라면 근무 형태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성비 조정은 채용 단계에서 억지로 숫자를 끌어올릴 것이 아니라 직무 수행 과정에서 누구나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공정은 청년세대가 사회와 국가에 요구하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성비 맞추기 채용은 일부 필요성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공정의 원칙을 지켜내는 절차 위에서 작동할 때 사회적 공감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다양성과 공정은 대립하지 않는다. 다만 그 균형을 어떻게 이루느냐가 관건이다. 지금은 인공지능(AI)이 모든 분야에 침투하고 있다.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일자리가 넘치면 성비 맞추기 고민도 사치일 것이다. 차제에 양성평등 채용 정책도 AI 시대에 걸맞게 새롭게 다듬어 미래형 제도로 정비가 절실하다. 이제 정부가 청년들에게 응답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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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 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