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TSMC의 첨단 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일본 기업 연루 정황이 드러나면서다.
‘中 공산당 아닌 日?’
5일 뉴욕타임즈(NYT)은 대만 검찰이 TSMC 영업 비밀을 불법 취득한 혐의로 회사 전·현직 직원 3명을 체포해 구금했다고 보도했다. TSMC는 모니터링 중 의심 행위를 감지해 검찰에 신고했고, 대만 고등검찰청의 지적재산권부가 용의자를 구속해 대만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대만경제일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TSMC는 지난달 일상적인 모니터링 중 의심스러운 활동을 감지해 당국에 신고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공산당을 의심했으나, 정작 포착된 건 일본 기업이었다. 대만 검찰은 일본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TEL)의 대만 신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6일 대만경제일보는 “구속된 TSMC 전 직원은 TEL에 이직해 근무 중이었고, 빼낸 기밀은 일본 라피더스에 유출돼 개발 중인 장비 조정을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됐다”라고 보도했다. 라피더스는 TSMC와 같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로, 일본 반도체 산업을 다시 살리기 위해 일본 정부와 대기업이 출자해 지난 2022년 출범했다.
2나노 경쟁 중 대형 사건
니혼게이자이신문(니케이)에 따르면, TSMC가 유출을 의심하는 기술은 2나노미터(㎚·1㎚=10억 분의 1m) 공정 기술이다. 세계 파운드리 1위(점유율 67.6%) TSMC는 세계 최초로 2나노 공정을 적용한 첨단 칩을 연내 양산할 계획이며, 애플과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다수의 빅테크 고객과 계약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수주한 테슬라의 인공지능 칩 AI6도 2나노 공정으로 생산하며,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서 2027~2028년 양산할 전망이다. 일본 라피더스는 2027년 2나노 공정 양산을 목표로 하며 지난달 시제품을 공개했다. 다만 아직 대형 고객을 확보하지 못했고, 자체 기술이 부족해 미국 IBM과 벨기에 IMEC으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았다.

전 세계에서 TSMC, 삼성, 인텔 3사만이 가능한 첨단 파운드리 사업에 일본 라피더스가 합류하려는 차에, TSMC 2나노 기술이 유출돼 라피더스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간의 대만-일본 밀월이 다소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초 TSMC 일본 구마모토 공장이 계획 발표 후 단 28개월 만에 완공돼 초고속으로 가동을 시작했고, 곧바로 제2공장 건설도 결정됐다. 그러나 지난달 2분기 실적발표에서 TSMC는 구마모토 2공장의 구체적인 생산 일정을 언급하지 않았다. TSMC가 이미 미국에서 대형 투자를 하는 만큼, 일본에서는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아시아 반도체 국가들 ‘기술 유출’ 몸살
TSMC는 2나노 칩을 대만 가오슝에서 연내 양산을 시작하며, 미국 애리조나에도 2나노 공장을 짓고 있다. 3~4나노 공정용인 애리조나 팹 1, 2기에 이은 3번째 미국 공장이다. 당시 2나노 칩을 ‘대만 밖’에서 생산하는 것에 대한 대만 내 반대 여론이 일었는데, 주 근거는 ‘대만을 지키는 실리콘 방패 약화’와 ‘기술 유출 가능성’이었다.
반도체 산업의 국가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한국·대만은 물론 중국에서도 기술 유출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22년 개정된 대만 국가보안법의 ‘국가 핵심 기술 무단 접근’에 대한 첫 번째 사건이라고, 대만 검찰은 밝혔다. 국가 첨단 기술 유출을 간첩 행위로 명시한 법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달 상하이법원은 화웨이의 반도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을 퇴사한 뒤 통신 칩 스타트업을 창업한 14명에 기밀 절도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했다. 한편, 하이실리콘에 이직하려고 SK하이닉스의 첨단 메모리 기술을 유출한 회사 전직 중국법인 주재원은 구속 상태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