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자신의 SNS에 황당한 광고가 떴다며 친구가 휴대전화 화면 이미지를 보내주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 광고였다. 앗, 이럴 수가? 나도 보여줄 것이 있었다. 내 SNS에 뜬 것은 그라프 목걸이였단 말이다. 쇼핑몰 검색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성실하게 시사 뉴스를 보았을 뿐인데 이런 광고를 받아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재치 만점 알고리즘의 센스에 감탄했다.
사실 김건희의 디올 핸드백 사건이 터졌을 때만 해도, 일회성 사건이겠거니 생각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밀실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정경유착,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거대한 정치적 음모라면 모를까, 요즘 세상에 저렇게 대놓고 뇌물을 주고받는 일은 너무 ‘후지다’고 여겼다. 떡값이니, 현찰 든 사과박스니 하는 부정부패와 금권정치의 낡은 관행들이 다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매관매직’이라는 고색창연한 단어를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마침내 금거북이까지 등장하면서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현실 감각에 극심한 혼란이 일어났다. 우리 함께 타임머신에 올라탄 것인가.
사실 나는 타임머신이 개발된다면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일주일 뒤의 미래로 이동해 이번주 로또 1등 당첨 번호를 알아 오는 것? 훗, 아니다. 나는 호남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기 한 3년 전쯤의 호남 지역 관아에서 딱 일주일만 탐관오리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산해진미가 넘쳐나고, 바다와 산과 들녘의 풍광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데다, 심금을 울리는 가락과 풍류가 울려 퍼지는 땅에서 말이다. 이 모든 것을 즐기려면 가난에 찌들고 노역에 고통받는 농민이나 노비여서는 안 된다. 한양에 머무는 임금이나 고관대작도 자격미달이다. 유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지에서만큼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없고, 무엇보다 핵심 요소인 풍광이 빠져 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가장 맛난 것, 가장 훌륭한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권력과 ‘현장 지식’을 겸비한 존재라면 역시 지역 탐관오리가 제격이다. 단풍이 물든 호젓한 정자에서 계곡 물소리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가락을 들으며 산해진미를 즐긴다면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 아니겠는가.
시간 선택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 암행어사가 출두하는 시간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동학농민군의 거센 운동이 아직 무르익기 전이어야 한다. 나름 구체적인 시간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한 가지 걸렸던 부분은 바로 ‘민중의 고혈(膏血)’이었다. ‘아, 마음에 걸리는데 어쩌지? 미안하니까 딱 일주일만!’ 하지만 현실의 보석 목걸이와 금거북이는 상상 속 탐관오리의 구차한 변명을 진정 덧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현실이 상상을 이긴다.
특검 수사를 통해 드러나는 진실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결코 21세기 탐관오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의에서든, 악의에서든 권력은 언제든 남용될 수 있기에 민주주의 사회는 촘촘한 감시와 규율 장치를 만들어두었다. 이를 체계적으로 회피하고 무용하게 만드는 것은 소수의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공모와 협력이다. 그것도 엘리트 집단 말이다. 평범한 시민들은 이 정도 스케일의 ‘체계적’ 악행을 저지를 힘이 없다.
500년 전,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 다녀온 여행가 라파엘의 입을 빌려 당시의 유럽 사회를 비판했다. “국왕의 주장이 아무리 정의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판사 중 한두 명은, 모순을 사랑해서 그러는지, 자신은 늘 남과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혹은 단순히 자기 이익을 추구하느라고 그러는지, 하여튼 국왕에게 유리하도록 법을 교묘히 왜곡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작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 여기에 왔다 가셨나 싶은 표현이다. 만일 21세기 탐관오리들을 타임머신에 태울 수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한 민중의 거센 물결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