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시간 국악이 맞서 싸워온 ‘편견’이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이러한 편견이 서서히 깨지고 있다.
이날치, 악단광칠, 서도밴드 등의 팀은 국악의 요소를 팝, 힙합 등 다양한 장르와 접목하며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전통음악의 대중성을 넓히고 있다. MBN의 ‘조선판스타’와 JTBC ‘풍류대장’ 등 국악 오디션 프로그램은 국악과 대중음악의 다양한 크로스오버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국악이 가진 멋과 매력을 선사했다.
그렇다면 TV 프로그램에서는 국악을 대중화하기 위한 어떤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을까?
최근 방송된 JTBC 드라마 ‘정년이’는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는 여성 국극이라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처럼 한국 음악계에서는 국악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해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려는 새로운 흐름이 끊임없이 일고 있다. 하지만 정작 매일 접하는 TV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아직 국악적인 요소를 활용하는 움직임이 크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전통국악은 오랜 세월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온 예술이지만 대중 접근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중 프로그램 속에 활용하기까지는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있을 것.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근 우리 가락의 독특한 맛을 방송 프로그램에 이질감 없이 녹여내는 새로운 시도로 시청자에게 파고들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KBS-1TV에서 방송되는 ‘우리집 금송아지’다.
“요것이 얼마 갈 수 있는가~” 전통 판소리로 승부수를 던진 KBS-1TV ‘우리집 금송아지’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40분 KBS-1TV에서 방송되는 ‘우리집 금송아지’를 보면 귀에 쏙 박히는 우리 가락이 심심찮게 들린다. 우리 노래 가락은 높은 가격이 나오면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하며 추임새를 넣고, 아쉬운 가격이 나오면 “비싸든 싸든 금송아지면 그만이지~”하며 익살스럽지만 유쾌하게 상황을 받아친다. 짧은 가락 속에 판소리 특유의 해학과 골계미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노래 솜씨 또한 예사롭지 않다. 프로그램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이 판소리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일까?
남원에서는 내가 K-팝 아이돌! KBS ‘우리집 금송아지’의 숨은 소리꾼, 양기권 씨
전라북도 남원의 작은 마을 가덕. 이곳에서 농사꾼으로 평생을 살아온 양기권(80) 씨가 바로 KBS-1TV ‘우리집 금송아지’의 숨은 소리꾼이다. 모내기로 한창 바쁘다는 양기권 씨는 태어나 평생 가덕마을을 떠난 일이 없는 남원 토박이다. 그러나 남원에서 양기권 씨의 판소리 실력은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동편제 판소리 명창 김정문 문하에서 사사한 동편제의 마지막 대가, 강도근의 마지막 제자이기 때문이다. 강도근 선생은 안숙선(국립창극단장)을 길러낸 스승으로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으나, 돈이나 명예에 초연하여, 타계하기 직전까지 농사꾼임을 자처하며 고향 남원에서 농사를 지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스승 강도근 선생처럼 농사꾼으로 살고 있는 양기권 씨는 판소리를 부를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간다. 덕분에 올 춘향제에서는 개막식 축하공연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남원 춘향제 무대에서 우리 소리의 맛과 멋을 보여준 동편제의 마지막 제자와 KBS ‘우리집 금송아지’와의 인연
양기권 씨와 KBS-1TV ‘우리집 금송아지’와의 인연은 20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집 금송아지’의 첫 촬영이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대강면 가덕마을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때 소장하고 있던 북을 감정받기 위해 나온 양기권 씨는 북을 치며 판소리를 한 자락 불렀는데, 그 소리를 들은 제작진이 그 자리에서 양기권 씨에게 프로그램에 노래를 불러주길 요청했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제작진은 그때까지도 양기권 씨가 판소리 대가 강동근의 마지막 제자인 것을 몰랐다고 밝히며, 양 씨의 거칠지만 힘찬 판소리가 재미있으면서 듣기 좋아 시청자도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예상은 적중했고, 시청자들은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는 반응 대신 “재미있고 신선하다”며 제작진을 만나면 프로그램 속 판소리를 따라 부르는 사람도 생겼다는 전언.
최근 100회를 맞은 KBS ‘우리집 금송아지’ 소리꾼, 양기권의 바람
소리꾼 양기권 씨는 ‘우리집 금송아지’를 보다 보면 80년 동안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친다며 이 프로그램과 우리나라의 국악, 넓게는 우리 전통문화유산이 닮아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라져가는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고 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 것과, 특히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길 당부했다.
“앞으로 우리집 금송아지에서 제 소리를 들려드릴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겠습니까? 그만큼 이 프로그램이 오래 가길 바라고요, 이 프로그램이 지금보다 더 인기가 많아져서 더욱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소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으면 합니다. 배우려고 한다면 더 좋고요. 안 그러면 결국은 다 사라지게 될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