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00만 원 VS 2억 3600만 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기준으로 조사한 전공의와 전문의의 연봉이다. 급여 차이가 3배에 달한다. 의대 6년을 마친 후 의사 국가시험을 통과하면 일반의가 된다. 수련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밟는 일반의를 전공의라고 부른다. 4~5년의 힘들고 고된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후 전문의 시험에 합격해야 비로소 전문의가 된다. 통상 전공의 연령은 20대 후반~30대 초중반, 전문의는 30대 후반~40대 초반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연봉 차이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전문의는 의원급은 물론 병원에서 정식 의사로 일할 수 있고 교수로 임용될 수도 있고 연구 의사로 성장할 수도 있으며 개원도 할 수 있다. 반면 전공의 과정을 마치지 못한 일반의는 대부분 월급 의사로 일하거나 개원 외에는 딱히 진로가 없다. 전문의는 개원할 때도 간판에 ‘○○○ 내과 의원’처럼 자신의 전공 분야를 나타낼 수 있다. 반면 일반의들은 ‘○○○ 의원(진료 과목 : 내과)’이라고 간판에 표시해야 한다. 자신의 이름 뒤에 진료 과목을 바로 쓸 수 없다. 동네병원을 찾는 환자들도 대부분 이런 정보를 알고 일반의보다는 전문의를 더 선호한다.
의정 갈등으로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이런 차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 2월 말 기준 사직 전공의 9222명 중 56.1%인 5176명이 재취업했다. 재취업한 전공의 중 60%가량인 3023명은 병원급이 아닌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의원급에서 일하는 일반의를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고 보지는 않는다.
전공의들이 대거 사직한 후 아이러니하게 병원의 구조적 문제들이 개선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전국 수련병원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는 1672명이다. 전공의 집단 사직 이전(1만 3531명)의 12.4% 수준이다. 이로 인해 빅5 병원의 전공의 비중이 5% 내외로 뚝 떨어졌다. 과거에는 전공의 비중이 30~40%에 달해 미국·일본 등이 10% 수준인 것에 비해 기형적으로 높았다. 교육을 빌미로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왔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었다.
수련병원들은 1년 넘게 전공의 공백이 이어지자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전문의를 더 많이 채용하고 중증 환자들을 집중 치료한다. 전공의 수준에서 가능했던 일부 처치는 ‘수술실 간호사’로 불리는 진료지원(PA) 간호사들이 대신하도록 하고 있다.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 등을 담은 간호법 하위법령도 조만간 제정될 예정이다. 정부는 전문의와 PA 간호사의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다. 툭하면 대형병원 외래나 응급실을 찾던 환자들의 인식도 상당히 개선돼 쏠림 현상도 개선되고 있다. 오히려 상급종합병원보다 진료 예약이 쉽고 전문의들이 있는 중형전문병원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전공의 없는’ 병원이 뉴노멀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1년여간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말도 안 될 정도로 혹독한 수련 환경이 알려지면서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주 100시간 이상 근무, 36시간 연속 근무 같은 노동 조건에 ‘교육’이라는 단어를 덧대왔던 기존 병원들의 작태에 국민적 감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의정 갈등의 도화선이 됐던 의대 정원 문제도 가닥을 잡았다. 내년 의대 정원을 3058명으로 되돌리는 대신 대부분의 의대생들은 학교로 복귀했다. 2027년부터는 의료계를 포함해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수급추계위원회에서 ‘과학적’으로 의대 정원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제 전공의의 시계도 돌아야 한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돌아갈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의대생들이 학교로 돌아가려 하자 “상대의 칼끝은 내 목을 겨누고 있는데, 팔 한 짝 내놓을 각오도 없이 뭘 하겠다고”라고 윽박지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아직도 전공의를 대표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오죽하면 서울대 교수들이 “설득력 있는 대안 없이 1년을 보냈다”며 “박 위원장의 페이스북 글들 안에 환자에 대한 책임도, 동료에 대한 존중도, 전문가로서의 품격도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 넘쳐난다”고 일갈했을까.
일반의로 살 것이냐, 전문의로 살 것이냐.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