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 정치개혁, 권력구조 개편만으론 부족하다

2025-08-10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리는 현행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과 개헌 논의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계엄 시도는 이른바 ‘1987년 체제’ 대통령제의 구조적 한계를 다시 확인시키며 권력 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과도한 권력 집중과 승자 독식의 제로섬 경쟁, 여소야대에서의 정국 교착, 정치 양극화 심화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 왔으며 이로 인해 이원정부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4년 중임제 등 다양한 개헌 모델이 논의되고 있고 일부는 여론의 지지도 얻는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병폐들이 과연 권력 구조에만 기인한 것일까. 현재의 정치적 교착과 갈등을 단지 제도의 형태나 구조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과도한 단순화의 오류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권력 구조 개편이 마치 정치 개혁의 만병통치약인 양 여겨지는 분위기에는 보다 신중한 성찰이 필요하다. 권력 구조 재설계에 앞서 정치 개혁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와 그에 따른 구체적 방향 설정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개헌은 현실적으로도 결코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고도의 정치적 합의와 국민적 지지를 동시에 충족해야 하며 정파적 유불리에 따라 논의가 좌초되기 쉬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설사 개헌이 성사된다 해도 그것만으로 정치 양극화나 국정 교착이 자동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력 구조는 어디까지나 정치가 담기는 그릇일 뿐 그 안을 채우는 정치 행위와 제도적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정치 양극화 해소와 민주주의의 회복이 진정한 개혁 목표라면 정치 개혁의 해법을 권력 구조 바깥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예컨대 양당제에 유리한 현행 소선거구제 선거제도와 취약한 정당 민주주의는 권력 구조만큼이나 한국 정치를 경직시키는 중요한 원인이다. 선거제도와 정당제도 개혁은 개헌보다 낮은 문턱으로 추진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 현실적인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최근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정치학회 특별학술대회에서도 한국 정치 위기의 원인이 단지 대통령제냐 내각제냐의 형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었다. 적대적 양당제로 굳어진 정당 체계에서는 어떤 권력 구조를 도입해도 양극화와 교착의 반복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의 다수결 중심의 정치 경쟁 시스템은 대통령직을 일종의 정치적 전리품으로 만들고 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막강한 인사권과 정책 결정 권한은 집권과 동시에 권력을 한 손에 쥐게 만들고, 이로 인해 대선은 단순한 권력 경쟁을 넘어 생존이 걸린 제로섬 게임으로 변질된다.

이러한 경쟁적 대결 구도를 부추기는 데에는 협치가 실종된 정치 문화뿐 아니라 선거제도와 정당 체계 또한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제도적 조건이 그대로라면 권력 구조만 바꿔서는 정치 현실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없다. 설익은 권력 구조 개편론만으로는 부족하며 선거제도 개혁 등 합의제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신생 정당의 진출을 넓히고 협치와 대표성, 정치 다양성을 제도화하려면 비례대표 확대나 중·대선거구제 도입 같은 선거제도 개혁이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해법이 된다.

정당 내부 의사결정 구조의 개혁도 절실하다. 현재 정당들은 계파 중심의 폐쇄적 운영 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당내 민주주의는 위축된 채 폐쇄적 리더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정당이 정책 중심으로 재편되지 않는 한 어떤 권력 구조를 갖추더라도 정치의 품질과 기능은 근본적으로 개선되기 어렵다. 동시에 협치를 정치적 패배가 아닌 민주적 정치 과정의 기본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정치 문화의 회복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정치 개혁은 권력 구조, 선거제도, 정당 민주주의라는 세 축이 동시에 작동하고 제도 간 정합성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렵게 권력 구조 하나만 바꾸는 정치공학적 해법이 아니라 정치가 작동하는 원리와 정치 행위 전반을 새롭게 설계하려는 정치철학이다. 그래야만 반복되는 실패의 고리를 끊고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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