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육의 ‘오징어 게임’을 끝내려면

2025-08-11

‘서울대 10개’ 논쟁과 관련해 지난 7월 종로학원 조사에서 이 정책이 실행되면 응답자 절반이 지역대학으로 진학하겠다고 답했다. 수도권에 집중되는 이른바 ‘인(In) 서울’ 추세와는 다른 결과여서 주목된다. 양극화된 정치 현실에 비해 지역대학의 동반 상승과 균형 발전에는 국민 여론이 대체로 우호적이다.

많은 찬반 논점 중에 국가균형 발전, 지역인재 양성, 입시경쟁 완화 기대가 눈에 띈다. 전체 대학생의 10%라는 대표성과 학술 연구 경쟁력까지 겸비한 거점 국립대가 선도한다면 광역권의 상향 평준화와 대학 서열주의의 완화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울대 10개 육성’ 놓고 갑론을박

지역 소멸로 균형발전 요구 절박

단계화·특화·기능연합도 검토를

반면 국립대 10개 키우려다 사립대 100개를 죽일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국공립대는 10개가 아닌 40개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만큼 투자하려면 고등교육 관련 정부 예산이 모두 들어갈 수 있다는 부풀려진 우려도 있다. 물론 실효성 의문도 여전하다. 지역과 무관하게 의대 입시 광풍이 더 문제라든가 다수 국립대의 자정 역량과 의지가 미흡하다는 비판도 매섭다.

균형발전 주장이나 지역 인재론은 정치적 수사 차원이 아니라 지방소멸 방지라는 절박한 호소다. 그동안 지역인재 의무 채용 등 얼마간 효과도 있지만, 세종시 및 혁신도시 등 역대 정부의 다양한 분산 노력에도 갈 길이 멀다.

얼마 전에 헌법재판소에서 의미 있는 결정이 나왔다. 충청·호남·경북권 한의대 입시에서 정원의 40%를 해당 지역의 고교 졸업생으로 뽑도록 허용한 현행 법령이 헌법에 합치된다는 재판관 전원일치 판결이다. 수도권 출신인 청구인의 권리보다 균형 발전의 공익이 더 중대하다는 취지였다. 균형 발전에는 국민과 헌법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셈이다.

국가 자원의 배분과 관련, 대한민국의 1인당 대학 투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6%에 그친다는 지적은 이미 뉴스가 아니다. 한국의 올해 총예산(673조원) 중에 고등교육 부문은 2.3%인 15조원에 불과하다. 초·중·고에 비해 현저히 불균형한 대학 지원을 확 늘려야 잠재력 있는 사립대와 UNIST·DGIST·GIST 등 지역의 강소 과학기술대학도 더 클 수 있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본래 능력·노력·성과를 바탕으로 보상한다는 것이다. 이 지배적 규범에 대한 심각한 자성이 학계와 언론에서 확산하고 있다. 고도 자본주의에서 초엘리트층의 교육자본과 문화자본 세습에 대한 비판이 부쩍 커진 것이다.

이에 덧붙여 ‘공간 능력주의’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공간 능력주의는 인간 집단의 속성과 능력이 도시·지역 등 물리적 공간과 결합해 불공평하게 발현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능력주의 논의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땅이 카스트를 키운다(The soil grows castes)”고 갈파했다. 최근에는 공간 세습, 지역 배타성, 도덕성 악화, 상하층 공간 모두의 불행으로 비판적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능력주의의 폭주에 대해 저명 학자들은 속속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2020년 하버드대 등 초일류 대학의 ‘입시 제비뽑기’를 제안했다. 적정 기준을 통과한 응시생을 대상으로 하자는 것이다. 다니엘 마코비츠 예일대 교수는 2019년 명문대 정원 확대, 중상류층 직업 육성을 주장했다. 모두가 극단적인 경쟁을 지양하되 필수 고급 기술 인력의 기회를 대폭 늘리려는 취지다. 잘 응용하면 국토 균형 발전 등 공간의 맥락에서도 통할 듯하다.

이재명 정부도 균형을 거론한다. 국토의 동맥경화, 경직된 공간 서열화, 승자독식의 학벌 프리미엄 등 불편한 현실은 인공지능(AI)에 물어도 공감한다. 사실 모든 대학을 살리고 다 지원하자는 것은 솔깃하지만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다. 소수 초일류 대학만 키우자는 주장은 오만한 엘리트주의다.

10개가 아니면 어떤가. 3~4개씩 단계화, 지역 특화, 거점국립대-과학기술대의 기능적 연합도 같이 대안으로 고민해보자. 물론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 연장, 고등교육재정 교부금법 제정 등 병행할 작업이 많다. 착한 공간 능력주의, 합리적 포퓰리즘이 ‘교육의 오징어 게임’을 끝낼 수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시철 경북대 교학부총장·전 한국정부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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