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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는 1938년 히틀러가 자신의 원래 조국인 오스트리아를 강제 합병하자 나치 제국의 전체주의를 비판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을 쓰기 시작했다. “인류 역사는 열린사회와 닫힌사회 간 투쟁의 역사였다”라는 전제로 시작되는 이 책은 1945년에 출간되었지만 강렬한 제목만큼이나 지금껏 전체주의를 비판한 최고의 명저로 꼽힌다.
포퍼의 닫힌사회는 비판과 반성 그리고 토론이 불가능한 사회이다. 그곳에서는 오로지 독단적 이데올로기를 강요되는 획일성만이 존재한다. 지도자는 신성하기에 그가 만든 제도나 언어는 금칙이 되어 누구도 비판할 수 없고, 발전은 이미 만들어진 법칙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역사법칙주의가 주도한다. 히틀러의 독일제국, 스탈린의 전체주의 국가, 헤겔의 절대정신으로 우상화된 국가, 마르크시즘에 경도된 국가 그리고 플라톤의 철인국가까지도 닫힌사회이다. 모두 21세기에는 존재할 수도, 존재해서도 안 되는 불량한 국가들이다.
열린사회는 그 반대로 다양한 의견과 비판이 자유로운 사회로,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서로를 인정하고 건전한 소통을 통해 비로소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열린사회는 혁명적인 변혁보다는 점진적인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로 추상적인 선(善)을 실현한다는 망상으로 현혹하는 것이 아닌 구체적인 악과 고통의 제거에 전력하는 사회이다. 당연히 오늘의 건전한 사회와 국가를 상징한다.
윤석열 정권 2년 6개월 동안 우리 사회는 닫힌사회였다. 부정적인 말에는 입틀막으로, 건전한 소통이 아닌 일방통행이었으며, 반대파들은 모조리 반국가세력으로 매도당했다. 강자에게는 비굴했지만, 약자에는 무자비함 그 자체였다. 그것도 모자라 제왕이 되고자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고, 심판대에 선 그는 경고성 계엄일 뿐이었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그런 자를 지지한다는 사람들은 진짜로 닫힌사회를 원하는가. 아무리 가짜뉴스라고 해도 듣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주장만 신줏단지처럼 신뢰한다. 서부지원의 난입으로 폭력성이 만천하에 공개되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신의 믿음은 그대로 이데올로기가 되어 그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다.
21세기에 포퍼의 20세기 책을 되새기는 이유는 열린사회로 가는 험로를 체험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수차례 압수 수색해 무혐의로 결론난 부정선거도 못 믿고, 미래 파급은 생각 않고 무조건 중국 탓으로 돌리는 이 무모함은 어쩌란 말인가. 잘못된 종교적 신념에 매몰된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선동하길 서슴지 않는 여당 정치인과 양비론에 숨어서 정론인 양 왜곡보고를 일삼은 언론들과 심지어 곡학아세하는 지식 판매꾼들의 행태는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이들이야말로 열린사회로 가는 길의 최대 적들이다.
우리가 여전히 열린사회를 향해 가야 하는 이유는 민주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20세기 닫힌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가. 그 희생을 딛고 올라선 오늘의 대한민국이 그 적들 때문에 또다시 혼란 속에 처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나 역사의 승리자는 열린사회였다는 포퍼의 경구를 믿고 오늘도 나는 민주주의를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