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뒤집기는 성공할까

2025-02-12

‘서부전선이상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EM 레마르크는 제1차 세계대전 독일군 학도병인 주인공이 전사한 1918년 어느 날 군 보고서 기록을 그대로 제목으로 뽑았다. 독일어 원제도 ‘서부엔 별일이 없었다(Im Westen nichts Neues)’다. 전쟁에서 한 젊은 병사의 죽음은 아무 일도 없던 것으로 무시될 수 있음을 압축한 문장이다.

“야당이 내란 프레임 만들어내”

윤, ‘탄핵=내란 공작’ 역공 시도

계엄을 소설로 뒤엎긴 힘들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헌법재판소 변론에서 밝힌 12·3 비상계엄에 대한 한 줄 인식이다. 또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형사 피고인으로서 한 줄 변론이자 탄핵심판의 직무 복귀 전략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민주당이 내란 프레임으로 만들어낸 체포나 누구를 끌어내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군인이 국민에게 억압이나 공격을 가한 사실이 없고, 오히려 시민에게 폭행당하는 상황이었다는 말씀”이라고 지난 11일 긴 설명도 내놨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윤 대통령이 ‘경고성 계엄’ ‘합법 계엄’이란 초기 소극적 방어 전략에서 벗어나 ‘계엄=내란’ 등식을 ‘탄핵=내란 공작’으로 뒤집어 거대 야당에 역공하는 적극적·공세적 전략으로 전환했음을 보여준 신호이기도 하다. “이재명·한동훈을 체포하고,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적 없다” “비상입법기구 쪽지는 모른다”며 계엄이 국헌 문란 목적의 폭동이란 검찰의 핵심 공소사실을 헌재에서 직접 부인한 게 대표적이다. 오히려 “계엄 해제 후 민주당의 탄핵·내란 공세가 정권 찬탈용 내란이자 정치공작”이란 주장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싫어하는 윤 대통령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즉각 효과를 봤다. 지난 8일 대구 탄핵 반대 집회(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엔 계엄 이후 최대 군중인 5만2000여 명이 운집했다.

지난달 26일 윤 대통령 구속기소를 기점으로 야권 탄핵 찬성 집회는 소강상태에 접어든 반면, 윤 지지층이 대결집하는 현상은 물밑에서 5~6월 장미 대선을 준비하던 야당은 물론 여당도 적지 않게 당황하게 했다. ‘윤 대통령 복귀를 대비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길 법하다.

하지만 문형배 헌재소장 대행을 포함한 8인의 재판관이 보수·진보, 개인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여론에 휘둘릴 정도로 녹록한 인사들이 아니다. ‘탄핵=내란 공작’이란 전략 전환은 헌재 심판은 물론 최고 사형·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는 형사재판 1심이 본격화하는 데 따른 위기감 때문일 수 있다.

아무 일도 없었다던 그날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전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국군방첩사, 특전사, 수방사, 정보사 등 무장 군인 1605명, 경찰청·서울청·경기남부청 소속 경찰 3790명을 동원해 국회, 선관위, 민주당 당사 등을 점거해 출입을 통제하거나 체포·구금·압수수색 등 방법으로 강압했다(검찰 공소장). 윤 대통령도 ‘계엄하 경비·질서유지’ ‘부정선거 점검 차원’이라며 목적은 달리 주장하면서도 국회·선관위 병력 투입을 지시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이 계엄이 ‘한 지역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동’(대법원 ‘12·12 군사반란 및 5·18 내란’ 판례)인지 헌재와 법원의 판단만 남았다.

지금까지 헌재 증언을 뜯어보면 윤 대통령의 ‘야당 내란’ 주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증인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 등 윤 대통령 고교 선후배뿐이다. 이 중 이 전 장관은 “대통령 집무실 원탁 위에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등이 적힌 쪽지들이 널려 있었다”고 했고,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정치인 체포’와 관련해 “김 장관 지시를 받아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특정 명단에 대한 위치 파악을 요청했다”고 시인했다. 종반전으로 치닫는 탄핵심판에 사실과 증거 대신 공작설·음모론으로 일관하다가는 윤 대통령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을 수 있다. 5120만 국민이 목격한 계엄을 이제 와서 창작이나 소설이라고 뒤엎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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